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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자는
밭이랑 사이로 오른쪽 다리에
몸의 중량을 싣고 왼다리는 건너 이랑까지 길게 뻗쳐 있었다. 그 자세가 앉아서 일하기에 무척 편한 자세였다.
검정 고무신 안에는 잔돌멩이가 서너개 들어 있고 뒷 굽 꾸덩살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하의는 몸빼를 입고 있고 머리에는 물날린 수건을 동이고 뒤로 묶어놓았다.영낙없는 촌 새댁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곁에는 고무줄로 배터리를 칭칭 동여맨 고물 라디오가 한 대 덜렁 놓여 있었다.
애타는 듯한 이미자의 목소리가 구성지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네!"


말자는 손에 쥔 호미를 부지런히 놀리면서
간혹 한번씩 손에 힘이 들어가는 듯이
손가락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늘에는
여유롭게 비행하는 송골매가 말자의 머리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말자야!"


뒤돌아 보니 언제 왔는지
영희가 감자 삶은 소쿠리를 들고
서 있었다. 청바지 차림에 힌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말자보다 한 살이 아래였다. 말자의 검은 피부와는 대조적의로 말끔하고 깨끗한 인상을 풍겼다. 얼굴의 피부가 핼끔했다. 둘은 동네에서 오리 떨어진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다.


말자는 그때까지만 영희와 공부할수 있었을뿐이고 그후로는 영희만 따로이 읍네 학교를 다녔다. 영희네 집은 이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고 그녀 아버지는 현재 동장을 맡고 있었다. 그 덕분에 영희는 시오리 떨어진 ㅇㅇ상고를 다녔는데 동네에서 몇 안되는 인테리 였다. 머슴애 들도 읍네까지 학교에 나간예가 드물었다. 그것도 비오는 날은 아침 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영희는
콧대가 높기로 유명했다.
동네의 또래 머슴애 들이 은근히 추파를 던지면 쌍도끼 눈을 하고 째려 보는게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요즘에 와서는 아무도 영희에게 말을 붙이려는 녀석들이 없었다. 비싼 먹물의 효력도 작용했다.


또 동네에는
영희의 설명이 필요할때가 종종 있었다.
몇일에 한번씩 영화 선전하는 짚차가 확성기를 매달고 왔다.
짚차 옆면 뒷면에는 포스터가 빽빽이 붙어있고
처음보는 외국영화의 주인공들과 배역옆에는 크고작은 글씨로
낯설은 영어가 적혀 있었다.
동네 조무래기와 또래의 친구들과 머시매들이 짚차를 둘러 싸고
그림을 구경 할라치면 영희는 으레히 앞에 나서서 그림속에 적힌 영어를 해석해서 일행에게 소개를 하는것이었다.


물론 아는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이 더많았다. 그렇지만 영희는 모르는걸 아는것처럼 흉내내는 재주가 있었다.
알파벳 정도는 아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매번 보던 배우나 앞에 달린 한글의 토를 보고 얼핏 짐작할 뿐이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때는
녀석들은 자연스레 영희가 앞에 나올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고
영희는 당연히 설명하는 것은 자기 몫이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그러면 영희는
학교에서 마신 먹물을 최대한
활용하여 머슴애들의 기를 팍 꺽어 가면서 유창하게 강의를 하는것이었다.


그러니
동네 머슴애들도
말자에게는 만만히 지내도 영희에게는 물건너 불 구경하듯 덤덤하게 대하는 것 이었다.
말자는 뭐든지 영희에게 양보를 하였고
영희가 말하는 것이면 다 옳은 소리로 받아 들였다.
영희가 오늘 말자에게 온 것은 선본 결과에 대해서 궁금하기 때문이다.


"얘! 말자야! 열흘전쯤 선 봤다던 사람이 어떻더노?"


말자는 대답하기 난처했다.
선보는 날 읍내서 자고온게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읍내 친척집에서 자고 왔다고 얘기는 했지만 말자의 밝은 얼굴과 하필이면 그날 자고온게 수상하다고 고개를 가우뚱 거리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말자의 입장이 곤란 하였다.


"응! 별로 사람이 신통 찮더라! 인물도 별로고 키도 별로고 그저 그렇데!"
"근데! 말자야! 같이간 너그 언니가 카는데 그사람 ㅇㅇ공고를 다녔다던데 정말이니?"
"응! 말로는 그러던데! 진짜인지 잘몰라!"
"야! 가시나야! 그것도 확실하게 안물어 봤나! 니는 따라 댕기기만 했나!
눈치를 살피면서 말하는 것 보면 냄새가 날게 아니가? 그리고 대구서 어느동에 자치하고 버스를 몇 번 타고 댕겼노! 그리고 몇회 졸업했노! 그런걸 꼬치꼬치 물어봐야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수가 있지! 아이고 가시나야! 니는 우애 그래 먹통이고!"


사실
말자는 이태껏
선볼때마다 남자들이 한번 보고는 말도 없었는지라
쌀밥 보리밥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건 얘기 해주면 그러려니 듣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평생 의탁 하려면 그사람의 됨됨이 건강정도만 보면 말자는 남자가 하자면 하자는대로 할 따름이었다. 사실 이번선은 말자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고 읍내로부터 기별이 오기만 기다렸다.


저녁에
들어오는 버스 소리만 나면 행여 읍내 언니가 오지않나 먼발치로 담넘어 쳐다보는게 일과였다.
그런데 시간이 벌써 열흘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