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희가
말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은 ㅇㅇ공고에 있었다.
영희도 지난번에 그학교 출신과 선을 보고나서 멋지게 퇴자를 맞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네 와서는 어림 반푼어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더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했다.
그런 학교의 머시매가 말자와 선을 보고 은근히 마음에 있었다 하니 영희의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 있었다. 어서 빨리 결과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의 위치와 자취방 가는길을 말자의 입을 통해서 들어보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을 하고 싶었는데 말자로부터 들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커피 마시고 읍내 바닷가로 데이트하고 점심 한그릇 먹었다는거 외에는 참고 할만한게 없었다. 영희도 말자의 거짓말 못하는 성격을 아는지라 더는 물어 볼게 없었다.
말자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읍내로 나가 언니네 집에 가보고 싶었지만 적당한 구실이 없었다.
농사일은 바빠지고 말자 아버지는 더욱더 잔소리가 작년에 비해 심해졌다. 말자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다. 말자엄마가 십여년전에 돌아가시고 나서 부터는 말자가 열여섯살 때 부터인가 부엌 일을 도맡았다. 그전에 말자 엄마가 죽기전 병석에 누워 있을때도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살아 있을때는 마음에 의지가 되어서 반은 엄마 몫으로 생각 했지만 돌아가시고 난 이후는 완전히 말자의 몫이 되었다. 말자가 장녀였고 맏이였다.
밑으로 동생이 넷이나 있었다. 여동생이 셋이고 막내가 남동생 이었다. 막내 흥수는 올해 열다섯살 이었다. 중학교 삼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녀석은 제법 똑똑했다.읍내학교에 갔다오면 그날 배운 것을 곧잘 말자에게 얘기해 주었다. 말자가 관심있게 듣는 것은 영어였다.
말자 아버지는 아내가 죽고 난이후에 자식의 장래를 위해 마음을 다잡아먹고 처음 얼마간은 열심히 일을 하고 술도 절제를 했지만 몇 달을 넘기지 못했다. 닷새마다 읍내장이 서는 날이면 지고간 가마니 열몇장을 처분한 돈으로 엉망으로 술을 마셨다. 집에 올때는 꽁치 엮은 두루미 새끼 한다발을 달랑거리고 오면서 온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말자 아버지 이름이 임갑수 였다.
그는 아내가 살았을때는 애처가 였다. 상당히 자상한 가장이고 동네 어른 들로부터 예의 바르다고 가끔씩 칭찬을 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정뱅이 소리를 듣더니 그가 술취해 오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멀찍이 피하는 것이었다.
마을 입구 야산에는 말자 엄마의 묘가 있었다.
냇가에 놓인 작은 돌덩이 몇 개만 건너면 천수답 논이 있고 논두렁 길을 따라 조금만가면 야산 입구에 초라한 말자 엄마의 묘가 있었다. 묘는 밤나무 그늘에 가려 동네에서도 길가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변변한 묘석도 하나 없었다. 봉분도 어린애 키보다도 낮았다.
잔디도 잘자라지 않아 한쪽 모서리에는 황토흙이 누렇게 드러나 있었다. 쥐가 뚫었는지 두더지가 뚫었는지 구멍이 하나 나있었다.
오늘도 말자 아버지는 동네앞까지 오자 새끼줄에 매달린 꽁치는 도로변에 던져두고 바지를 동동 걷더니 그 자리에서 쌈지속의 엽초를 꺼내 짥은 곰방대에 담배를 다져 넣고 지프 라이터를 꺼내 불을 당겼다.
라이터 불이 확 켜지는 순간
임갑수의 주름지고 한달쯤 면도하지 않는 꺼칠꺼칠한 얼굴이 드러났다.
나이보다 십년은 늙어 보였다.
그는 올해 오십이다. 나이 답잖게 할아버지 테가 완연히 드러났다. 어린애들이 쳐다보면 아무도 아저씨라고 불러주지 않을만큼 늙어 있었다.
아내가 죽고 난 이후로 마음의 상처와 어린것들의 걱정이 머릿속에 화두처럼 박혀 있었다.
한때는 자식들을 생각해서 새 장가를 들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도 그에게 올 사람이 없었다. 그는 보통 사람이 보내는 시간개념 보다 몇배나 어렵게 보내고 있었던 겄이다.
담배가 꺼지기 전에
걷어붙인 바지를 한쪽손으로 사타구니 부분을 치켜올리더니
엉거주춤 시내를 건너기 시작했다. 건들 거리는 돌맹이에 헛발을 디뎌서 휘청 거리더니 간신히 중심을 잡고선 건너 언덕배기에 도착했다.
언덕배기를 지나
꼬불꼬불한 논두렁 길을 따라 가는데 임갑수는 몇 번이나 중심이 흔들거렸지만 기어이 마누라 무덤앞에 가서야 픽 쓰러졌다. 담배가 아직 타고 있었다. 임갑수는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극락세계에 온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마누라 있는데 갈수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죽음이 감미로운 단잠으로 느껴졌다.
그는 늘하던 버릇대로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임자! 내가왔네! 자네만 편히 쉬고 있으면 맘이 편한가! 자들은 어찌하라고 태 무심한가! 내 오늘 읍내장에 가서 한잔먹고 왔네. 그리이 어서 일어나게 ! 내 술국 한그릇 끌여주게 아아들 밥도 안묵었는데 자네가 나가서 차려오게!"
임갑수는 그렇게 말하고선 길게 드러 누웠다.
안방에 누워 있는 것처럼 편안한 자세였다.
말자는
집에서 연방 시게를 봤다. 아버지가 올 시간이 이미 지났는데 걱정이 되었다. 흥수를 깨웠다. 흥수는 투덜거렸다.
"야야! 흥수야! 아버지가 올때가 되었는데 걱정이된다. 내캉 마을앞에 까지 나가보자! 아메도 술한잔 잡숩고 오는 모양이다. 암만 잡숫지 마라케도 잡수이 걱정이다."
말자는 헌 궤짝속에든
후랏쉬를 꺼들고는 스위치를 엄지 손가락으로 밀었다.
히미하게 불이 오더니 이내 불빛이 사그라 들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심정에서 흥수를 앞세우고 동구밖으로 나왔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니까 온동네 개가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길에 눈이 적응하기 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흐르고 나서 앞이 더듬더듬 보이기 시작했다.
|
Pre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