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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야!
누나!
그날 이랬단다.
내 얘기를 들어 보렴.
바닥 중앙 통로에는 백설같은 하이얀 천이 깔려있고
그 위로 멋모르는 아이들이 떼그르르 구르면서 쳐다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대 중앙에는 우드색 단상이 단아하게 놓여있고 앞쪽에 금빛 촛대가 좌우로 열은 넘어 보이는게 주르르 팔 벌려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불란스 풍 붉은 제복을 입은 날씬한 두 아가씨가 나팔을 손에 든채 휘황찬란한 산드리아 불빛을 받으며 곧 등장할 두 사람 주인공을 위하여 설레는 표정으로 보폭이 아주 짦은 걸음으로 약간씩 움직이고 있었지. 무대를 내려서면 붉은 융단이 깔린 좌우 측에는 두 개의 의자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단상 좌측에는 검은색 매끄러운 양복을 입은 이가 무언가를 들여다보며 말문을 열 채비를 갖추고 있었단다.
누나!
드디어 음악이 바뀌드니 아주 감미롭고 달콤한 선율이 장내에 울려 퍼지고
마이크 속에서 "지금으로부터 신랑 박한석 군과 신부 이경희 양의 짝짓기를 거행합니다." 라는 선언을 신호로 동화속에 보던 힌 안개가 자욱이 뿜어 나오고 아이들 주먹만한 물방울이 호르르 수없이 나오드니 전면 단상은 천국의 나라가 열리고 있었다. 물방울은 무지개를 만들고 한동안 떠 돌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누나와 생질 녀석이 들어오고 저 편에는 육십 후반쯤 되 보이는 노 부부가 함께 입장하곤 절을 하고 서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식장안은 벅찬 감동에 휩싸였지.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더래. 옆에 앉은 작은 매형을 바라보니 무덤덤한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 것 같더니 고개를 한동안 외면하다 바로 하더라.
신랑 입장이 있고 그때 처음으로 신랑을 봤다.
누나!
그 녀석 듣기 보담 훨씬 더 낫더라. 머시마가 덩치도 있고 묵직한게 소가지 비좁은 경희 보다는 훨씬 낫더라. 그다음 "신부 입장!" 하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돌렸다. 힌 면사포에 고개를 숙이고 나긋나긋 걸음을 걷는 경희가 그 옛날 매형 손을 잡고 친정 나들이 오던 누나 새 초롬한 자태와 흡사 하더라. 아아! 세월이 흘렀고나! 코흘리개 저것이 화산 분교 일학년 일적에 외 삼촌인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갔다. 선생님이 밖에 낯선 사람이 어른거리니 날 보고 누구를 찾아 왔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경희가 외삼촌을 보고 부끄러워 고개를 외로꼬고 크레용으로 그림만 열심히 그리고 못본척 한적이 있었다. 그무렵 내가 혈기 왕성한 스물 몇 살 때였는데 벌써 그것이 시집을 가고 매형은 하늘 나라로 가시고 남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 가-들을 위해 옛 어른처럼 절을 받아야 하는구나! 누나!
울지 말껄! 그 좋은날 왜 우니? 아이들이 저렇게 장성하여 제가끔 한 몫씩 살아 가고 있지 않니? 매형은 양지바른 감나무 밭에서 편히 잠을 자고 있고 매일 밭에 가면 볼수 있지 않느냐!.....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미움도 증오도 원망도 기쁨도 한낱 티끌되어 후르르 창공속에 날려보내고 오로지 삭신 닳도록 베푼 누나 공덕으로 매형이 계신 곁으로 가는일만 남았잖니!......
내가 너무 애 마르고나! 다시 예식 얘기를 해야겠다. 아니 그 순서가 바뀌었다. 그전에 점등이 있었다. 그리고 신랑 신부의 입장이 있었고.... 누나! 그때 고개를 들고 경희를 바라볼껄! 계속 울기만 울고 그러지 말지. 주례사는 떠듬떠듬 진행하는데 이때까지 그렇게 말 주변이 없는 사람은 생전 첨 봤다. 아마도 그 사람이 날 같더라. 그래선지 더 가슴에 남고 나는 그 양반이 더 좋아지더라. 주례사를 마치고 신랑신부의 맞절이 있고 하객들에게 절을 할 차례였다. 그때 서너살 먹은 꼬마녀석이 쪼르르 달려 나오더니 신랑 신부 곁에 와서 융단 깔은 그 위에 떼그르르 한번 구르더니 해벌쭉 신부의 얼굴을 빼꼼이 쳐다보고 무슨 예술품을 감상하듯 하니 구경하던 모든이가 와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붙잡으려 뛰어 나오는 실로 극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때도 누나는 고개를 들다가 말았다.
누나!
그렇게 예식은 진행되고 사진을 찍으려 갈 때쯤 해서 나는 사진을 찍으려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사진속에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였다. 우리는 그길로 뷔페식당에 가서 부산 누나, 매형, 상익이, 제수씨, 명희 엄마, 최서방, 상순이 하고 한 귀퉁이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남매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꽤 오래 되었고나. 우리는 모처럼 만에 온갖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었고 제수씨는 아주버님인 날 끔찍이 생각하며 쟁반에 갖가지 음식을 갖고 와서 곁에서 소주도 따르고 거- 무슨 횐지 쫄깃쫄깃한 생선을 집어서 내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아내도 맥주를 서너잔 마셨다. 모두 그 시간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몇 번 없을 귀중한 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다음날을 위해 추억 만들기에 열중하고 나는 술이 오르자 늘 하는 습관대로 노래를 불렀단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곳/
물레방아 아-소리 들린다./ 메기내 사랑하는 메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네/
옛날에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내가 감정을 이기지 못해 곁에 사람이 다 들릴 정도의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내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제수씨는 내 풍부한 감정을 잘알고 손가락으로 박자를 짚고 있었다. 흐르는 듯 떨리는 듯한 내 노래는 우리 남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옛적 그 후덕한 매형 손잡고 누나 고오흔 얼골에 하이얀 저고리 물색 치마 버선발에 힌 고무신 신고 고향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집 강아지가 먼저 알고 쪼르르르 달려나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반기고 어머니는 작은 누나와 가마니 짜다가 미쳐 신발도 덜 신은 채로 달려나가고 아버지는 뒷짐을 진채로 담장 밖을 넌저시 바라보다가 매형이 집안에 들어서서야 흠흠 거리시곤 "이 서방 인자 오는가?" 하셨다. 나는 큰 방에서 밥상 위에 영어 책을 펼치고 아이 엠 어 보이. 유 아르 걸. 하다가 작은 누나 뒤를 따라 달려나가곤 했었지.
누나야! 사랑하는 누나야!
이미 매형은 떠나시고 홀로 남은 누나는 쉰 하고도 여덞 해를 살았구나. 올 해도 그 옛날 고향 동산에는 참꽃이 피었고 재 너머 강가 버들가지에는 물이 올라 아이들은 그걸 꺽어 피리를 부는데..... 고향 그 집에 다시 가서 살자. 나는 망태들고 눈 횡덩거런 늙은 암소를 데리고 뒷산에 올라 풀을 베어오고 어머니는 이제 늙으셨으니 뜨듯하게 군불땐 큰방에 무명 이불을 깔고 그 위에 편히 쉬시게 하고 누나는 정지에서 보쌀 삶아 소쿠리에 얹어두고 채전밭에 가서 정구지라도 한 웅큼 베어 감자 넣고 된장이라도 찌지렴.
작은 누난 가마니 그만 짜게 하고 콩쿠르 대회에 가서 노래나 부르게 하자. 아우는 냇가 피리 잡으려 보내고 막내 순이는 질 조흔 연필과 공책을 사주고 다니다만 학교에 다시 보내주자.
난 소 배불리 풀을 먹이고 그 놈이 꺼억꺼억 되새김질할 무렵 지게지고 산에서 내려올께! 그때 남포를 꺼내 불 밝히고 안 마당에 아버지가 쳐둔 실한 새끼줄 위에 메달아 두렴. 내가 마당에 멍석 깔테니 그 위에 저녁상을 차리자. 둥그런 상위에 둘러 앉아 옛날 아버지가 앉던 자리에는 내가 앉고 그 옆엔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누나 부른 노래 얘기를 들어보고 막내 학교에 가서 배운 얘기며 아우 고기잡던 얘기도 들어보고 수제비 속 감자도 건져 먹으면서 그렇게 살자꾸나.
이제 경희도 시집을 보냈으니 할 일이 없잖니?
어머니는 이미 기운이 쇠잔하시어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단다. 내 마음이 자꾸만 초조해 지는구나.
누나야! 아아! 사랑하는 누나야!
이제 누나 몫은 끝이 났으니 우리 그렇게 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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