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수의 말에
약간씩 혀 꼬부려지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말자씨! "
"예? 말씀하시이소! 창수씨!"
"우리 오늘 선봤다는거 생각하지 말고요. 그냥 기분 좋게 놀다가 갑시다.
이것도 인연이 아닙니까? 이제껏 말자씨 만큼 마음씨좋은 사람 만나지 못했습니다.
나는요
여자가 너무 인물이 뺀드르르 하면 거부감이 느껴지더 라고요.
왜 그런지 압니까?
그런 사람들은 말한마디 잘못하면 금방 삐져가지고 새족하니 인상이 변하더라고요.
그래도 말자씨는
적어도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창수씨가 잘 봐주니 정말 고맙네예.
동네 언니들이 카는데예 성질낼줄 모른다 카기는 캅디더.
창수씨까지 그런 말할줄 몰랐심더. 고맙심더!"
"자 말자씨 나는 안 있습니까! 여자도 술 한잔 하는게 좋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 말자씨도 한잔 하입시더!"

"창수씨 전요.
정말 술 못합니더! 이해해 주이소!"
"아니 조금 잔만 채웁시다. 그래야 무드가 산다 아닙니까!"
창수는 점점 대담해지는 자신을 의식하면서 여자에게 소주병을 갖다 댔다.
"예! 창수씨! 그럼 조금만 할게요!"
순간적이나마 여자는 당황을 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럴수록
창수는 점점 여자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감지 합니다.
여자는 손수건을 꺼내어 창수의 양복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고
자신도 약간 외면하더니
술잔을 얼른 입속으로 털어 넣었습니다.

그러더니
동태의 연한 살점을 뜯어내어 젓가락에 집어서 한손은 밑에 받치고 창수의 입에 넣어줍니다.
창수는 강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처음 만나서 이렇게까지 여자가 헌신적으로 나올줄은 몰랐읍니다.

창수는
낮선 여자에게
또 그것도 서로 상대방의 속을 들여다 보려는 자리에서
창수의 횡설수설을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것도 그렇지만
오랫동안 살을맞댄 부부도 하기가 어려운 행동이 여자로부터 잇달아 나오자 당혹과 무안스러움이 교차하면서 오히려 여자의 능동적인 자세에 코너에 몰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수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면서
탈출구를 모색합니다.
지난번 먼저 선본 여자들은 대부분 창수가 붙잡지 못해서 안달을 부렸다면
오늘 이 여자는 창수를 적극적으로 붙잡으려니 흐뭇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가치가 떨어져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원하게 창수에게
다가서니 오히려 마음 한구석에는 리드당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뭔가 여자에게 보여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간절한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창수는 연달아 소주잔을 들어서 입속에 털어 넣었습니다.

"말자씨!
나는요! 꿈이 이렇습니다. 굉장히 거창한 것이 아니고 아주 평범한 가난한 꿈을 꿉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해질 때 털래털래 집에 옵니다.
아내는 높은 옥상에서 해지는 노을을 구경 하다가 남편이 오는 장면을 구경 합니다.
그러면
하루종일 기다림에 지친 아내는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그리곤 '여보세요! 제가 나가요! ' 하면서 달려 나옵니다.
서로서로 마주보면서 달려 갑니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는 러브씬 같은 진한 포옹 같은 야한건 싫습니다.
그냥 다가와서는 남편은 아내에게 그냥 '하루 종일 있으니 심심 하지요?' 그리고는
아내는 주위의 눈치를 피해서 흘깃흘깃 하며 '이제 오십니까? 많이 피곤 하지요?' 그러면서
소매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정도의 애정표현이 가장 적당 하다고 생각 합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너무 야한 것은 보기에도 아슬아슬 합니다.
그 보다는
사람의 수명도 일정한 분량을 타고 나듯이
애정 역시 그러 하리라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아껴야 한다는 겝니다.
지나친 것 보다는 차라리 모자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이 하던 속에만 귀여워 하고 겉은 무표정한 애정의 표현이 일리가 있다 그말입니다.
말자씨! 내가 오늘 헛소리 많이 하지요?
너무 오버행 같지만 제 성격이 그렇다는 것을 나타내는 겝니다.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 자! 우리 한잔 합시다!"

창수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너무 깊이 본론과는 거리가 다소 먼 부분까지 말합니다.
여자는
강단의 교수가 강의하는 것을
받아 들이듯이 심각하게 귀를 기울입니다.

"예! 창수씨!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 날들이 창수씨에게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예 그런 사람이 좋습니다. 마음이 통하는게 최고 안 좋습니까?
알고마 지내면 되지 꼭 그것을 겉으로 나타내야 좋다는 법이 없지예!"

창수는
또 한발자국
말려 들어간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각을 정리 하느라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일려고 주머니를 뒤집니다.
그러자 여자는 맞은편에서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탁자위의 라이터를 집어 들고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붙여서 창수의 담배에 갖다 댑니다.
못난 얼굴과는
달리 여자가 발산하는 강한 특유의 채취가 느껴지면서 빠른 심장의 박동이 느껴집니다.
창수는 선택의 여부가 없습니다.
불을 붙여 길게 한번 빨아 들이고는 훅 한번 내뿜습니다. 이제껏 마셨던 술이 한꺼번에 확 오르는 기분입니다.

생각이 더 더욱 떠오르지 않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될지 가슴만 팔닥 거릴 뿐입니다.
시계는 이미 아홉시가 넘었습니다.
여자가 집의로 돌아 가야할 차 시간은 이미 지났고 먼저 가겠다고 말을 꺼집어 내는 사람이 없으니 좌석이 묘하게 흘러 왔습니다.

"창수씨!
한잔만 더 드릴까요?"
"그라입시더!"

창수의 혀 꼬부러 지는 소리가 강도가 높아졌다.

"창수씨! 저는예! 창수씨 처음 봤을때는 인상이 차거워 보였는데 자꾸자꾸 얘기 해보니 창수씨가 착하고 부드러운 사람 같아 보이네예!"
"아입니다! 나는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더! 말자씨가 그래 봤다면 오산입니다. 껄꾹! 죄송합니다."
"창수씨! 제가 시원한 물 한그릇 떠올게요!"
"예! 고맙습니다!"

창수는 많이 취해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아슴츠레 보였다.
못생긴 얼굴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창수의 가슴속에 다가섰다.
밖의로 나간 여자가
물 그릇을 갖고 들어섰을 때 창수는 천정이 빙그르르 도는 것을 느꼈다.
여자가 곁에와서

"창수씨! 자요!"

하고 물 그릇을 내밀었을 때
창수는 반쯤 타다만 담배와 함께
몸의 균형이 여자쪽으로 스르르 허물어졌다.
바깥에는 이미 캄캄한 어둠이 가득 채워지고
마당에 재빠르게 오가던 달구 무리들도 벌써 홰에 올라가고 시나불 시나불 꼬꼬꼬 거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 올뿐이고
방안은 히미한 전등속에서 억겁의 시간이 잠시 딱 멈춰 있읍니다.
간간히 톡닥 거리는 빗방울 소리만 나직히 들려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