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화면속의
한 악당은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한채 다리를 편 기마자세로 서 있었다.
싸늘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는 전면의 적을 응시하며 오른손이 서서히 들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의 총잡이도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검게 탄 얼굴에 관록이 묻어 있었다.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팽팽한 신경전이 전개 되면서 서로 눈짓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가 먼저 뽑아라! 아니다! 네가 먼저 뽑아라!"
"아니다! 나는 너처럼 먼저 뽑는 비겁한 총잡이가 아니다! 네가 먼저 손이 올라가면 나는 나중에 뽑고 너를 쓰러뜨리마!"
두 사나이는 일순 정적속에 멈춰있었다.
애리는 태호의 손을 꽉움켜 잡고
침을 꼴까닥 삼켰다.
태호의 매끄럽고 기다란 손가락에 힘이 느껴지면서 평소의 부드럽기만한 그의 이미지 답지않게 강한 남성미가 전달되어 왔다.
두 사람의 시선은 화면을 똑바로 응시한채 어둠속에 감춰져 있었다.
극장안은
바늘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탕! 탕!
촌각의 여유를 두고
두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앗! 애리는 태호에게 순간적으로 넘어졌다.
태호는 침착을 가장하고 넘어져오는 애리의 상체를 받아 안았다.
서너번 손목은 잡아본 일이 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황당하게 품에 안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가슴
팔딱거리는 순간이 진정되었다.
영화속의 주인공 몽고 메리웃드는 천천히 말에 올라 금화 한잎을 땅에 던졌다.
까페의 영감님에게 싱긋하고선 거치른 황야를 달려나갔다.
초원은 말발굽에서 일으키는 흙먼지로 자욱 하더니 이내 멀어져갔다.
이색적인 황야의 서부음악이 먼지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휴! 태호씨 자 나가요!"
"괜찮습니까? 애리씨! 무섭지 않아요?"
"아뇨! 괜찮아요! 태호씨가 곁에 있으니까 괜찮아요!"
태호는 애리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실내는 일순 밝은 불이 환하게 켜지며 웅성거리며 일어서는 사람들의 소리로 혼잡스러웠다.
둘은 통로로 나오자 다정스레 팔짱을 끼며 애리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자세로 태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극장 뒷골목에는 가로등이 켜져있고
벌써 흥청거리는 인파로 넘실대고 있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전봇대를 끼고 한쌍의 눈동자가 유심히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애수인지 의기소침인지 모를 빛을 한동안 품어 내고 있었다.
+ + + + +
창수는
심한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느라
소주잔을 들고는 연신 들이켰다.
역하게 화장냄새를 풍기는 여자 하나가 창수 곁에서 아양을 떨고 있었다.
스므두어살 정도 되어 보였다.
안주라곤 두부찌개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고 그것도 반밖에 들어 있지않았다. 맹물에 가까왔다.
소주잔을 들이키면
안주는 숫갈로 국물 한숫갈씩 떠먹고 있었다. 극도로 안주를 절약하고 있었다.
피워문 담배를 한번 훅 하더니 술잔을 탕! 둥그런 함석으로 만든 탁자위에 내려 놓았다. 중간에는 연탄이 들어가는 자리가 뻥 뚤려 있었다.
"야! 니이름 뭐라켔노!"
"오빠야! 금방 갈체좋는데 또 잊어 뿌랬나! 숙자라 안카더나! 오빠야 오늘 술챘나!
고만 먹어라! 내사마 오빠야 인데 돈벌어 묵을 생각없데이!"
"야! 이 가시나야! 내돈은 돈이 아이가 뚜겁은 돈이 따로있나! 니는 그런돈만 상대해서 내돈은 시퍼가지고 돈으로 안보이제?"
"오빠야! 내가 아까부터 안카더나!
암만 내가 흘렀는 인생이라케도 정말로 오빠야 돈 뺏게묵고 살고 싶은줄 아나!
봐라!봐라! 오빠야!
내나 오빠야나 다 불쌍한 사람들 아이가!
오빠야 피땀흘려 일해가지고 번돈 여거 술묵으러 오면 오지 마라칼수는 없고 와가 묵으면 그돈 받아 가지고
내 맘인동 편한줄 아나! 참말로 오빠야는 내 진심을 몰라주니 내가 섭섭하데이!"
숙자는
진심을 얘기하고 있었다.
숙자는 505 번지 창부였다. 창수는 이집에 단골이었다.
한달에 한번씩은 여기 와서 숙자하고 술마시고 헛소리를 숙자에게 털어놓고
숙자는 숙자대로 창수가 온다면 다른손님 다 제끼놓고 창수 곁에와서 창수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귀찮은 응대도 마다않고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이집 포주 숙자 엄마는 돈안되는 창수가 오면 너덜머리를 내지만 그래도 좋다고 찾아오는 손님이다 보니 냉정히 거절은 하지 못하고 "그저 너 왔느냐!" 하고 먼사돈 인사 하듯이 할 뿐이었다.
창수 역시
월급날만 되면 산통 들어가는 것 제하고
자기 용돈. 버스비 제하고 나서 몇푼 남는 것 가지고 달랑 달랑 여기오니 포주엄마도 좋아할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돈으로 갈데라곤 아무데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 오면
숙자가 반겨주니 창수로서는 마지막 위안처이자 가장 편한 자리이기도 했다.
오늘도 즐겨 쓰는 헛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낮에
일어났던 일들을 곰곰이 되씹으며
쓰디쓴 감정을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은 다르게 그게 아니었다.
"숙자야!"
"와! 오빠야!"
"니는 만날 여거 이래 있을꺼가? 아이고 가시나야! 니가 왜 이짓을 하고 있어야 되노! 이놈의 가시나야! 니가 공장에가 열심히 일해봐라 누가 머라 카겠노! 입 싹딱아뿌고 니만 열심히 하먼 누가 아노! 귀신 밖에 아는 사람이 없대이! 니는 그런 요단가리도 없제! 가시나야! 불쌍타 니 인생이! 오빠야 말 한분 잘 깊이 새겨 들어래!"
일순
숙자의 눈 언저리에는
눈물이 고였다. 숙자는 원래 고아 였다.
정이 그리운 여자 였던 것이다.뚜꺼운 돈에 가급적이면 많이 놀아주다가 창수의 짤랑돈에도 기꺼이 와주는 여자였다.
창수는 창수대로 자신의 핸디캡을 숙자에게 전달함으로 해서 마음이 편하여 지는 것이었다.숙자가 불쌍해 보이면 보일수록 자신의 우월감을 느낄수 있었다.
창수는
그자신의 창수모습이 떠 올랐다.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미스김의 꼿꼿한 모습이 떠 올랐다.
김애리의 타자치는 장면과
윤태호의 안경너머 해말간 얼굴이 떠오르고 기름기 자르르 도는 손가락이 떠올랐다.
고급 식당에서 옷에 음식 찌꺼기 튀지않게 먹는 아메리칸 메너가 찰찰 넘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부르조아 반동분자들의 모습이었다.
꼴도 대하기 싫은
여유있고 배부른 자들의 외출이었다.
|
Pre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