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 4주차 교육이 있는 날. 드디어 수료 등반이다. 퇴근하면서 먹을꺼리 좀 사고 바로 집으로! 배낭 대충 꾸려놓고 엄마한테 된장찌게 꺼리 좀 다듬어 달라고 부탁하고선 낮잠! 토요일 한시간씩은 꼭 자둬야한다구. 안 자면 일주일 내내 우울하단 말야!
한시간 동안 달게 잔 후 눈을 떠보니 바로 옆에 울 아줌마도 자고 있다. 양파썰다가 바로 낮잠자는 못말리는 울 아줌마...하핫

큰 배낭 메고 장비넣은 30리터 배낭을 다시 들고 상우언니 만나서 시민운동장으로! 오늘 야구하느라 유난히 복잡하다. 양손에 맥주며 통닭이며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간다. 와....좋겠다아.슬며시 또 부러워도 지지만 아니야!.흥 그래두 암벽이 훨 재미있어! 그럼그럼! 너희가 홀드를 아느냐 크랙을 아느냐....흥!

6시 30분에 버스가 오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후딱 저녁 먹자고 신대장님이 전화하셨다. 모두들 기다리는디.....우잉. 먹을것에 약하기 때문에 후다닥 식당으로 뛰어가다. 미리 시켜놓아서인지 자리에 앉자마자 국밥이 나온다. 벌써 6시 20분인데...사람들은 훌렁훌렁 마시고 벌써 일어선다. 우아 디따 빨리 드시네. 나도 느리게 먹는 편은 아닌데 갑자기 빨리 먹으려 하니 잘 못 먹겠다. 에고에고. 이미 계산이 끝난 빈 자리에 혼자 꿋꿋이 앉아 끝까지. 먹다가 죽을것 같아.

6시 30분. 달려라 달려! 먹은 국밥이 역류하는듯도 한데 꾸욱 참고 뛰자.버스까지 뛰어갔다가 아차차. 내 배낭! 도로 건너편에서 집채만한 꾸러미가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상우언니인듯하다. 서둘러 되돌아가니 역시다. 내배낭 두개와 언니배낭과 텐트까지 들고 어기적어기적. 에고 미안해요.

화원나들목에서 정차하여 동기님들을 태운 후 가조 고견사 주차장으로. 저녁 9시 도착. 벌써 세번째 오는 고견사 주차장.내일 의상봉 오르면 의상봉도 세번째 오는거겠네. 조금 올라가니 바로 야영장. 텐트 치고 간식 먹을 한 시간의 여유! 조장님. 오늘은 무슨 닭요리에요? 하니 불판과 삼겹살을 꺼내놓으신다. 오옷 좋아라 좋아라! 고기를 굽다보니 생각외로 안 먹힌다. 속이 더부룩하니 분명 아까 급히 먹은 국밥에 체한 모양인데.....소화제를 먹어도 쉬 가라앉을듯 같진 않다. 먹을것을 앞에 놓고 이렇게 초연하다니, 나도 이런 내 모습이 낯설어.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야

야간교육시작. 최부장님께서 여러 암벽장비를 꺼내 명칭과 용도를 설명해주신다. 선선하고 맑은 공기 속에서 소쩍새소리 배경음악으로 깔아두고 듣는 암벽 강의. 가스등 불빛 아래 열심히 강의하시는 최부장님. 멋있습니다. 최부장님의 검은 파이브텐 몸빼바지까지도 멋있습니다. ^^*

강의 후 간단하게 교육생들의 암벽반 소감 발표 시간도 가지고 하니 12시가 훌쩍 넘었다. 속은 아직도 묵직하니 더부룩하고 명치가 답답한데. 이러다가 내일 교육에 지장있는게 아닐까? 슬며시 걱정도 된다. 화장실 갔다가 1시 되어 취침. 오늘도 5조 남학생들은 비박이다. 연숙언니랑 둘이서 텐트에서 자려니 조금 미안하기도 한데, 답답해서 텐트는 싫어, 밖에서 자는게 좋아라고 하는 상우언니. 늦바람이 무서운 법인데...나중에 암벽 교육 끝나고도 주말마다 혼자 밖에서 주무시는거 아니에요? 단체로 이렇게 하면 멋있지만 혼자 하면 노숙자인데...

체한 것 때문에 잠도 안 온다. 답답하고 찌르르 아픈것도 같고 뱃속이 쿨럭쿨럭 요동을 치는 것도 같고. 눈만 붙였다가 시계를 보고 또 눈붙였다가 시계 보고.어제 교육도 늦게 끝났는데 설마 5시에 기상시킬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5시 15분 기상소리가 울린다. 스트레칭후 역시나 이어지는 새벽 구보! 그나마 아스팔트 길이라 좀 낫다. 천천히 뛰어간다. 어제 혼자 파틀랙 연습했는데 그 여파로 다리에 알이 배였다. 그래도 운동하고 등산하고 암벽타서 생긴 근육통은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 이상하지? 분명히 아픈데도 기분이 좋아지니...고통과 쾌락은 본질이 같은건가? 에고 또 개똥철학 나온다. 잡념을 버리고 달리기나 하자!

다시 유턴하여 되돌아오는 오르막길! 아까 내려갈땐 참 편했는데 이제부터 고생좀 하겠네. 그래도 뛰어오르자! 가뿐 숨을 몰아쉬며 자일의 정 노래 부르며 구보 종료. 마무리 스트레칭으로 새벽 구보 훈련을 마치다.

텐트로 돌아와 아침 식사. 된장찌게가 은근히 입맛을 돋운다.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나선 느낌이 이상하다. 뭐지 이 이상한 기분...고개를 갸웃 하다가 앗! 나 체했는데...밥먹으면 안되는데....아직도 뱃속은 천둥소리가 요란하니 가스가 차있는데 아무생각없이 밥 한그릇을 밀어넣었으니....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게 아니라 내장도 고생이여! 소화제 챙겨먹고 정로환 챙겨먹고 결막염약 챙겨먹고 비타민제 챙겨먹고. 약을 한주먹 먹으니 그것도 배부르다. 히히

버스에 막영 장비 다 챙겨넣고 소형 배낭 하나 짊어지고 교육 시작! 최부장님과 막내가 선두를 선다. 목소리가 고운 막내, 오늘은 몇 곡이나 들려줄려나...고견사 올라서 약수로 목을 좀 축인후 실크로드 안내판이 있는 길로 접어들다. 최부장님이 여길 개척하셨다구요? 오옷...역시 멋있습니다! 오르막에서 자꾸 속도가 떨어지는 막내를 똥침놓는다고 협박. 얼른가 막내! 나뭇가지 줍는다, 뽀족하게 다듬을 꺼다 협박하다 보니 어느새 실크로드 시작점 1봉이다. 여기서 오르락내리락 해서 7봉까지 가고 7봉이 바로 의상봉이라는 말씀. 봉마다 두 코스가 있는데 1번 카라코람 2번 발토르코스. 보통 1번이 쉬운 코스이고 2번이 어려운데 6봉에선 거꾸로 되어있다는 설명 듣고 장비 착용하고 릿지 시작!

안자일렌으로 1봉은 가뿐하니 올라서다. 조금 내려서서 바로 2봉. 지체가 많이 되어 대기시간이 길지만 그것마저 좋다. 그냥 발아래 숲들과 산자락을 내려다보며 멍하게 있는 시간이 좋다. 아무 생각도 없이 말도 없이 경치를 보는게 좋아서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하면 잘 안되는 무념무상의 시간이 산에서는 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숙언니는 한봉 넘을때마다 간식 먹자고 한다. 난 여전히 배에서 꾸룩꾸룩 소리나며 답답한디....맘껏 먹을수 있다는 것도 복이여 복!

대기시간동안 5조는 산노래 열창! 같은 노래인데도 바위위에서 부르니 쩌렁쩌렁 산이 울린다. 산에선 떠드는게 아니랬는데. 지금 한창 자고있을 동물들아 세곡만 부르고 조용히할께.

바위를 에돌아나가니 바로 건너편 암봉에 동기님들이 보인다. 그림같이 멋진 바위와 어우러져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사진 찍고 내려서는데 건너편 암봉의 최부장님이 부르신다. 바로 옆 바위에 올라가보란다. 예? 하니 아들 둘 낳는 바위라고 올라가보라하신다. 음 그래요? 아들도 딸도 상관이 없지만 일단 아들 둘 확보해놓고! 내려오니 사람들이 남근석이라고 말한다. 그래요? 갸웃. 남학생들도 그러고 아줌마교육생님들도 그러니 닮았나 보네. 아참, 결혼바위부터 올라서고 그다음 저 아들바위에 가야하는거 아닌가? 일의 순서가 결혼부터 해야하는디.....

점심시간. 여전히 체증이 내려가지 않은 나는 두 술 먹고는 수저를 내려놓다. 초코렛을 집어 먹으며 밥을 이렇게 못먹어서야 살수있을까? 이러다 죽는게 아닐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쵸코렛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15미터, 20미터되는 절벽으로 하강하는 코스도 있다. 8자하강기 걸고 주욱 내려오는데 제일 신난다. 119 구급대원 출동! 두두두두두! 소리내며 휭~ 하니 내려서고싶지만 아래에서 조교님이 보고계시기에 입으로만 두두두두 소리내며 내려오다. 나이도 웬만큼 먹었는디 왜 이런게 재미있을까?

다시 암봉으로 오르다. 이게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인가? 몰라 하여간 재미있다는 것은 확실해! 4주간의 교육으로 이제 모두들 암벽에 익숙해졌는지 주마로 올라가는 쉬운 코스를 5조원들 모두 외면하며 암벽코스를 고집한다. ^^* 교육의 힘이란!

마지막 7봉 오르기! 머리위 홀드가 보이는데 다리가 짧아 손이 안 닿는다. 남들은 벌떡벌떡 일어서며 잘도 잡던데 키가 작은 나는 힘이 든다. 에이..발바닥에 살이라도 찌워서 키를 늘리든지 해야지...

7봉에 올라서니 바로 의상봉 표지석 뒤로 나온다. 아, 이런 길이 있었구나 싶다. 길이란게 원래 있는게 아니고 개척하면 다 길이 된다. 아, 좋다!

기념 사진 찍고 고견사로 하산. 버스타고 고속도로 가기전 들른 보리밥집. 4주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훈련부장님, 조교님들, 그리고 동기님들 모두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좁은 방안이지만 서로 다닥다닥 붙어앉으며 흐뭇한 표정들이다. 정규반 수료등반하고 또 다른 느낌이 든다. 동계반 수료하면 또 어떤 기분이 들까? 슬며시 동계반에 솔깃해진다. 확 저질러 봐?

앗! 분명한건, 교육 마치고 흐뭇하게 웃고 떠드는 사이에 체증이 사라졌다. 오옷......역시 등산학교! 명의가 따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