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강사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리며 동기생여러분께 폐를 끼쳐 정

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저는 과거의 생활습관을 과감히 벗

어 던지고 실천하는 산악인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사실 저는 최태환

강사님 말씀하신 유산족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산과 멀리하며 4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지난 2005년 6월11일 등산학교 1차 등정일까지

는 나야말로 속세에서 세속적 생활에 젖어지냈던 속인.



대구등산학교를 알게된 지는 18년이나 되었지만 과정내용은 전혀

모른채 그냥 인터넷검색하여 무식하게 등록. 그리고 바로 지난

토요일 오후에 부랴부랴 장비구해 팔공산자연보호헌장앞에 쫄래졸래 동

지 한 명과 함께 용감히 출현. 의기양양 그 자체. 원철호강사님 동화사

정문까지 선착순 10등정도 주파. 그 때만해도 동기들중 나를 그 정도로

자리메김하는 착각을. 하룻강아지 범무서운 줄 모른다, 무식한 놈 용감

하다 누가 그랬던가? 그런데 육군전역 18년만에 1150미터고지 점령이라

는 지상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산정상이라곤 앞산밖에 못 가보았

지만 낮에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팔공산을 난생처음 도전하는 야간산

행이었지만 주저없이 머리전등까지 켜고 육탄돌격.


사실 니는 가방이나 신발끈 매는 방법도 몰랐었다. 그러면서도 첫날부

터 무리하여 동기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기어기어 겨우 꼴

찌통과.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뿐. 결국 오른무릎이 망가진다. 오른쪽이

힘을 못쓰자 왼쪽에 과도한 힘을주고 결국 왼쪽도 상태가 나빠졌다. 그

건 사지가 멀쩡하게 40여년을 살아온 나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

상 초유의 사태. 지난번 체력관리 조상경강사께서 년식이 오래되면 어쩔

수 없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상황이 이렇게 빨리 내게 찾아올 수 있단말

가? 온갖 상상이 뇌리를 스치는데, 마침 만일의 사태에 대비 준비해온

침을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 12시 10분전에 취침소등이라 하여 한시간 걸리는 사혈로

손써 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자다가 새

벽 2시에 만난 비상사태에 겨우 능선까지 악으로 기어올라가는 사이

에 무릎은 좀 더 악화된 것 같았다. 다음날 일찍 어혈을 빼야겠다고 생

각하고 피곤한 몸을 뉘었다. 작년 독사에게 발뒤꿈치를 물려 응급조치하

고 119에 실려가서도 바로 다음날 아침 퇴원해서 초인적으로 걸어다녔

던 나였는데 가방20킬로무게를 못 견뎌서 장애인신세가 되었던 것. 그런

데 다음 날도 나의 무릎은 전혀 회복되지않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

둘을 제외하면 동기생 대부분은 화려한경력과 쟁쟁한 등산가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대구등산학교라는 명예를위해서 여기에 입학했다는 것도

그 날 처음 알았다. 그걸 알고 우리는 점점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 순

간 나의 경쟁상대는 동기생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

는수없이 마지막코스인 내원암에서부터 대오를 이탈하는 불명예. 마침

아내도 역시 등산화에 오른발목 복숭아뼈가 부어 올라 더 못 걷겠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왼발에 나는 오른무릎 장애를 가지게 된 것.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는 홀연히 떠나가는 동지들의 뒷모습

을 바라보는 우리 처지가 너무나도 처량,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한쪽 다리는 어느 정도 쓸 수 있었던 것. 그런데 내원암에서 콜택시

타고가자는 아내를 달랜다. 우리가 부상당한 것도 모두 준비부족에

따른 책임이며 다른 동기생들이 어려운 산길을 걷는데 어떻게 택시

를 타고 가느냐고 겨우 설득해서 걸어가는 것으로 합의. 유산족에 끼여

한쪽다리를 질질끌며 걷는 길은 외롭고도 쓸쓸. 무엇보다도 뼈저린 불명

예. 내원암을 뒤로하고 둘이서 낙오되어 엉금엉금 내려오는 길. 아내는

투덜거리며 팔자에 없는 고생을 나 때문에 한다면서 학교를계속 다녀야

할지 심각한 고민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가 최태환강사님이 가방싸기

과 신발매기를 배운 것만 해도 10만원은 된다고 했는데 벌써 우리는 본

전을 찾았으니 그만두자면서 나를 유혹하기까지. 기가 막혔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떻게 등록하게 되었는데 등산학교를 이렇게 그만둔다면 너무

나도 허무다. 그건 더더욱 엄청난 불명예.유산족들 틈에서 1시간정도만

에 출발지에 도착. 한참을 기다리자 동기생들의 씩씩하고 자랑스런 모습

이 저쪽에서 보이기 시작. 땀에 흠뻑 젖은 동기생과 강사님의 어깨, 등

줄기, 겨드랑이를 나는 침을 질질 흘리며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것을 눈

치챈 동기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 다리와 어깨가 뻐근하고 무릎은 아팠지만 콧노래를 부

르면서 오늘의 절반의 성공을 자축하며 다음부터는 체력관리를 철저

히 하자고 다짐. 집에 오니 우리를 가슴졸이며 기다리던 두 딸이 우

리 둘 다 살아서 돌아와 다행이라면서 달려와 안기는데 밀려오는

눈물 한 방울. 월요일아침 일어나니 의기충천. 하지만 몸은 아직은

조금 불완전. 하지만 더 이상의 불명예는 없다. 명예로운 대구등산학교

의 실천하는 산악인으로서. 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