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눈만 감으면 강인한 독사같은 최기환 훈련부장님, 능구렁이

같은 강사님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분들 때문에 정말

너무나도 힘들었던 2주차 암벽등반교육. 하지만 후배의 안전과 기쁨

을 위해 격려방문지도해 주신 선배님들과 끝까지 웃음 잃지 않고 격

려하는 동기생들 덕분에 너무나도 푸근했던 나날들. 몸은 비록 으스

러지는 듯이 아프고 쑤시지만 마음만은 어느 유토피아의 하늘을 날

고 있는 듯한 월요일아침.


67기 등산학교 훈련과정 2주차교육과정을 수료했다고 하기에 부끄러

운 사람이 꼭 한 사람 있다. 그 이름은 1번 교육생 조대희. 왜냐하

면 이번에는 오른쪽 발목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마지

막날 수태골 주차장에서부터 출발지로 돌아오는 구보대열에서 탈락

했다. 지난주 오른 무릎 때문에 완주 못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이번 주에도 이런 일로 동기들에게 누가 되다니. 하지만 나는 이

미 강인한 동기생들과 경쟁하겠다고 하는 꿈을 접은 지 오래다. 왜

냐하면 그것은 바로 나는 나 자신과 경쟁할 뿐이지 누구와의 경쟁

의 차원에서 이 등산학교에서 교육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



지난번 조상경강사님께서 하신 말. 평행봉 뒤로 뻗어서 올라가기

를 몇 년간 한번도 못해보았다. 그 후 그것을 완전히 포기. 그랬더

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더라고. 그 목소리에 담긴 비련을 누가 알

까? 그런데 이제야 나는 알 것 같다. 몸이 이렇게 약골이 될 때까

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나. 18년전 육군제대 할 때만

해도 세상에 겁나는 게 하나 없었는데. 그땐 갓바위까지 구

두신고 뛰어올라가도 숨차지 않았는데. 육군병장 한마디에 산천초목

이 벌벌 떨었었는데. 그동안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고 병원신

세 한번 지지않았는데.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나일뿐 현재

의 나는 아니지 않은가? 과거의 경력을 나 자신의 현재로써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불혹을 겨우 넘긴 때에 이렇게도 무참

하게 무너져가는 나의 육신이여. 허망하도다. 인생의 덧없음이여!


첫째 주 산행할 때 너무 숨이 너무 가빴었다고 했더니 아내가 혈액

검사 한번 받아보라고 우겨대서 몇 일전 병원서 혈액검사를 해보았

는데 아니나 다를까 헤모글로빈 수치가 9.1이었다. 산소를 운반하

는 능력을 가늠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12로 회복될 때까지 절대안

정하고 심한운동은 운동도 자제하라는 것. 주치의는 내가 정상수치

12-13로 회복되려면 6개월 정도 걸린다고 주장. 하지만 그것 때문

에 등산학교 67기의 정든 동기생들을 뒤로하고 낙제로 인한 68기생

으로의 유급은 있을 수 없는 것. 그래서 꾸역꾸역 동화사입구까지

올라간 것.


첫날 밤 청소년월드컵축구예선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육생32명

중 29명이 동화사입구에 집결. 대단하다 67기여. 자랑스럽도다 67기

여. 집합시간부터 예정에 없던 빗방울이 우두둑거리면서 우리 교육

생들을 서글프게 한다. 하지만 조금의 빈틈도 없이 교육은 실행된

다. 교육생 잘못 끼운 안전바클 뒤엉킨 것을 벗겨내서 마지막 하나

까지 바로 잡아주시는 강사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매듭실습 잘못

해서 아무것도 아니게 묶어놓은 교육생들의 매듭을 하나하나 고쳐주

시는 강사님의 정열적 눈빛에서 가슴깊은 곳에서 존경심만이. 야간

교육중 잠시 우리를 격려방문하신 등산학교선배님들의 열렬한 응원

과 시원한 음료, 통닭, 과일까지 푸짐. 사회에서 선배나 동기애를

이렇게 끈끈하게 느끼게 될 줄이야. 코끝에서 눈물 한방울.


야간교육후 잠자리에 든 것이 1시. 눈을 뜨게된 것이 5시 좀 넘어서

니까 기상. 고된 노동후 너무나도 짧았던 잠자리. 하지만 모두

들 잘도 일어난다. 강사님 힘찬 구령에 맞춰 수태골 왕복구보까지

무사히 마쳐도 6시 30분. 아침을 부랴부랴 지어 먹고 집합하여 팔공

산스카이라인을 넘어 수태골 암벽교육장에까지 도착해도 9시가 안

된 상태. 까마득한 절벽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 저

길 어떻게 올라간단 말인가? 그런데 강사님들의 철저한 교육업무분

담과 격려지도오신 또 다른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우리들은 어느새

애송이산악인이 아니라 벌써 중견산악인이 다된 느낌. 자일에만 의

존하여 자기확보하고 두 손놓고 춤추고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이 있

는가 하면 바위절벽을 자유자재로 갖고 논다. 스스로 겁쟁이라서 도

저히 할수없다고 주장하던 동기생들도 어느새 겁없이 바위벽을 오르

락내리락. 그 모습을 보니 교육이란 이토록 무서운 효과를 가져오는

구나 싶었다.


암벽등반훈련을 모두 마치고 저마다의 어깨와 등줄기에는 땀이 말라

서 마른 소금기로 옷바깥에는 소금지도가 그려져 있다. 땀을 비 오

듯 쏟아내고도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내려오는 길. 또다시 구

보로 자연보호 헌장탑까지 간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그런데 딱

한 사람 공식 환자로 인정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 조대희. 동

기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나는 오늘의 이 불명예를 내일의 채

찍으로 생각한다고 떳떳이 말하고싶다. 왜냐하면 오늘의 등반은 내

인생의 등산사에서 첫째 장으로 자리메김할 것이며, 오늘의 산등성

이하나에 목숨걸지는 않겠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보다 큰 내 인생

의 등산을 위한 첫걸음이므로.


그런데 나는 이번 등산학교에서 엄청난 것을 알게되었다. 어느 누구

보다도 더 등산학교에 감사해야되는 사람중의 하나일 것이다. 만약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나는 나의 체력저하와 노화현상을 알아채

지 못한 채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이번 교

육과정을 통해 나는 자신의 육체적 체력관리의 문제점을 조기에 발

견하였고 나아가 노화예방과 치유준비까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이다. 우리의 육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고. 하지만 그 말을 흘려 듣는 경우가 많다. 등산학교는 내게 그

말을 실감나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이번 등산학교에서 매일매일 수많은 인생의 진리에 대해서 넉

넉히 배우고 있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등반 기술이나 산에서 잠자

는 방법과 매듭 방법, 그리고 가방싸기나 신발끈 매기를 배우는 것

만해도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산악인으로서의 자연보호나 체력관리

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처럼 피부에 와 닿게 나를 깨우쳐준 경우

는 일찍이 없었다. 강사님들이 준비해오신 강의보따리를 풀어낼 때

마다 나는 놀란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지식과 사실들에게. 나는 매

일 기다린다. 등산학교가는 날을. 강의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동기

생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멋진 등산의 세

계가 내게 활짝 열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결국 나는 명예로운 대구

등산학교 67기정규반을 수료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멋진 산악인

이 될 것이다. 67기 동기 모두에게 영광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