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해냈노라 come, seen & done


시저는 말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고. 그런데 우리는 이제 비로

소 말할 수 있다. 왔노라 보았노라 해냈노라고. 대구등산학교 정규반수

료 갖고 웬 호들갑이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시저가 로마정복을 위해 루

비콘강을 건넌 것처럼 중대한 결단이었다. Cesar crossed the Rubicon.

왜냐하면 이번 대구등산학교의 짧은 기간중 우리가 인생에서 배워야할 대

부분의 중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배우고 경험했으며 그래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심신의 건강이라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기 위한 대성공의 초석을

놓았다고 확신하기에.


평소 나와 아내는 건강을 자신했지만 인내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 이

번 기회에 인내력을 좀 키워야겠다는 단순생각으로 덥석등록. 그런데 몇

달 전 히말라야 3500미터고지까지 트레킹 다녀왔다고 팔공산을 우습게 보

는 아내를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높아진 콧대를 꺾

고싶은 생각도 있었기에 그럴만한 가치는 있었다. 그런데 막상 첫 주 등

반의 뚜껑을 열어보니 아내는 잘도 가는데 내가 먼저 무너져 버렸다.

앗! 차~. 3500미터 그냥 갔다온 것이 아니었구나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

은 것. 아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슈퍼맨인 줄 알고 있을 텐데.

헐~ 강력한 나의 이미지 실추.


인내력길러 주려다가 오히려 내가 시험에 빠진 것. 전혀 예상 못한 일.

첫주 등반서부터 나의 오른 무릎에 무리가 와서 한쪽 다리 질질끌며 하산

하는 마음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패배감만. 사실 대구등산학교

를 얕보고 기초체력도 다지지 않고 아무런 준비없이 덜컹 등록한 것은 분

명 등산이론에서 배웠던 인적 위험에 나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킨 것. 하옇

든 첫 주 등반에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겼다. 하지만

그 때 들은 최태환강사님노래실력은 가슴 깊은 곳에서 존경심만을 자아냈

다. 사실은 내 실력도 만만찮으므로. 최종낙오하산하게 되었을 때는 엄

청난 불명예라는 생각과 너무 무리해서 어찌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마음의 쌍곡선을 그렸다.



처음 얼마간 아내는 그냥 무게잡고 묵묵히 다니더니, 어느 날 시큰둥해져

서 무슨 군대도 아니고 뭐야하면서 투덜거리고 계속할 것 같지 않았다.

내심 천방지축 그녀가 그만두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지만 그걸 표출하면 안

되었기에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기필코 졸업하고야 말 거예

요." 누가 어떻게 하든 나는 대구등산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과 사명감을 타고 태어난 것처럼 보여지고 싶었던 것. 주사위는 던져

졌다. The die is cast.



2주차 날씨도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밤새 비가 개이고 이루어진

암벽등반때는 까마득한 절벽 위의 곡예사들과 벌이는 아찔한 순간의 연속

속에서 느끼는 스릴과 전율감. 결국 모두들 땀을 뻘뻘. 한 사람도 빠짐없

이 무사히 안착. 언제나 우리들을 위해서 선배들이 강사님과 함께 물심양

면으로 도와주신 덕분. 아무런 댓가없이 오히려 몸과 마음을 바쳐서 물심

양면으로 봉사하는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깊은 존경심만이. 암벽등반

을 마치고서야 아내는 꼭 수료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아

닌가. 나는 이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하면서 나의 무릎을 바라보았다. 나도 어떻게 될 지 알 수는 없었

다. 하지만 그때 나는 말했다. Don't worry! No Problem!



그 주에 마침 텔레비전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지들을 위해서 히말라야까

지 다녀온 휴먼원정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이전

에 이런 내용을 보았다면 그렇게 감동되지 않았을 텐데. 바로 그 생생한

화면 앞에서 숙연해졌다. 이런 헌신적 베테랑 등산가들조차도 인적 위

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등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등반

즉 살아 돌아오는 것이라고 가슴깊이 되새긴다. 강의하실 때 웃으며 나

선 집 웃으며 돌아오자고 하신 엽상욱강사님말씀 찡하게 와닿는다.

Survival is most important.


3주차 독도법과 릿지등반도 일기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

이오나 바람이 불어도 산행은 계속된다고 하셨던 엽상욱강사님말씀처럼

우리들의 등반은 계속되었다. Mountaineering was continued. 비가 오락

가락하는 궂은 날씨 속에서 독도법과 릿지등반후 하산 길 잠시 쉬는 틈

에 동기생의 요청에 나의 노래솜씨를 뽐내었던 것도 예기치 못했던 수

확. 듣고싶어하는 이가 별로 없어도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내 노래를 계

속 부르리라. 결국 독도법강의와 4주차 오리엔티어링실습으로 우리는 세

계어디를 가더라도 지도와 나침반만 있으면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강의 처음 받을때는 그냥 단계별 과정교육에만 전념했으나 이처럼 체계

적이고 조직적인 커리큘럼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우리 학교의 교과와

실습은 유기적으로 잘 연계되어있는 것 같다. 단계별로 등산화 끈 매기

부터 자연보호, 오리엔티어링과 종합등반에 이르기까지 이전 주 배운 이

론을 다음 주에는 어김없이 실습이라는 형태로 체험숙달학습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


그런데 5주차 종합등반에서는 원철호강사님의 모습은 독사을 연상시킬 정

도로 강인했지만 만돌린이나 하모니카를 연주하시는 모습은 강함 속의 부

드러움으로써 낭만 그 자체였다. 2미터 앞도 잘 안 보이는 짙은 안개비

와 깊은 산속에서 길을 헤메다가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 도착한 깊은

산 속 옹달샘 옆에서의 비브왁은 난생 처음. 밤하늘의 별은 없었지만 참

으로낭만적인 밤이었다. 이슬비 듬뿍 머금은 풀밭. 준비해온 비닐위에 침

낭깔고 그 안에 몸을 밀어넣으니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오고 꿈속으로 빨

려들어간다.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깊은 밤 그대 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

터 그댄 내게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

산이 없어요. 이젠 지나버린 이야기들이 내겐 꿈결같지만 하얀 종이 위

에 그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노래가 절로나온다. 하지만 내 생각만

하고 노래를 내질러 버릴 수는 없는 일. ㅋㅋㅋ 새벽이 열리자 온갖 새들

이 몰려와서 아름다운노래로 우릴 사정없이 깨운다. 강의와 교육원칙에

철저하신 원강사님 뒤를 따라다니면서 모든 대원들보다 앞서 등산로를 개

척해나가는 선등이 무엇인지를 맛보며 무언지 모를 뿌듯한 자부심.


그런데 우리 동기들은 아주 특별나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 그리고 출신성분이 전혀 다르지만 각기 저마다의 개성과 소질을 화

합과 단결로써 승화시키고 하나된 모습을 보이며 각고의 노력과 보이지

않는 인내력으로 수료최종 성공률이 85%(28/33)에 육박. 일찌기 등산학교

사상 이렇게 우애가 두터운 기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당

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전문산악인과 야매산악인과 기초산

악인 그리고 개척등반대원이라고 자신하는 멤버로 구성되어있는 최정예

산악인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통해서 이

해와 화합이 잘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벌써부터 킬리만자로등반

대 에베레스트등반대 몽블랑등반대까지 조직하고 있는 등 실천하는 산악

인으로서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낙오되지 않

은 것이 대단하지만 우리 모두 참으로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다. 비로소

우리는 이제 말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해냈노라. Come, Seen, & Done.


지난 5주 동안 우리는 앞만 보며 걸었다. 땅만 보며 걸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수료일이 눈앞에. 그런데 산길을 걸으며 5주동안 생각했던

의문점이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든 산행을 하는가? 그런데 이제 그런 의문

이 거의 풀렸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발가락 끝에서 머리카락하나 까지

도 자신의 두뇌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끊

임없이 두 눈과 코와 귀를 작동시켜서 다음 발길을 내려놓을 곳까지의 거

리를 눈대중으로 재고 그 거리만큼만 발을 옮겨놓는다. 만약 눈대중이 잘

못된 계산에 의한 것이라면 헛다리 짚게되고 하나뿐인 귀한 몸뚱이를 길

바닥이나 절벽 아래로 내동댕이쳐지게 되는 것. 그래서 한순간도 방심해

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음주가 두뇌와 반사신경을 무디게 하므로 음주산행

은 절대 안 된다고 하셨던 강사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이 상기된다.


그런데 발을 내디딜때 그 곳이 마침 돌이거나 흙일수 있다. 만약 돌이라

면 입체적이거나 평면적일 수도 있다. 입체적이라면 매끄러울 수도 뾰족

할 수도 있다. 평면적이라면 삼각형이나 사각형일수도..... 흙이라면 진

흙이거나 마사토나 마른 흙일 수도 있다. 만약에 경사가 급하거나 물기

가 있는 곳이라면 미끄러질 것에도 대비한다. 또 돌이나 흙 아닌 그 무엇

이 있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 걸음 앞도 눈감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산앞에서 겸허하여야하고 가능한 모

든 감각기관과 지력이 총동원되어야 하고 동원된 모든 기관을 충분히 사

용하여 끊임없이 계산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은 꼭 우리 인생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등산가들은 겸허

하고 겸손한지 모른다. 그리고 등산을 하면 삶의 차원이 한 단계 고양된

다고까지 하는가보다. 등산하다가 가벼운 대화라도 하게 된다면 대화는

우뇌에서 관할하고 이것을 듣고 입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이것과는 별개

로 등산하는 길에 대한 정보는 끊임없이 좌뇌로 취합계산하면서 걸어가

는 길에 대한 정보를 팔다리 발 손으로 전달하여 장애물을 정리해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경사진 바위를 지날 때는 팔의

완력을 적절히 이용하여야한다. 혹시라도 앞에서 장애물주의하라는 구호

가 들려오기라도 하면 그 것을 뒤로 전달하면서 그 장애물이 언제 출형할

지 생각하면서 나타날 때까지 주의를 집중해야한다. 또한 배낭에 든 물건

들이 어디로 쏠리는지,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으니 어떤 자세로 얼마 동

안 얼마만한 힘으로 어느 정도까지 전진할 것인지 계산해야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

는 것이다. 등산은 그야말로 온몸의 감각과 신경을 완전집중해야만 되는

것이다. 어깨와 허리의 근육과 평형을 감지하는 몸의 모든 기관과 세포

에 감사한다. 살아있는 동안 내 몸의 모든 기관을 활용하여 나는 등산하

리라. 이번 등산에 동원된 모든 근육과 관절과 두뇌또한 영양을 공급해

준 소화기관과 산소를 공급해준 호흡기관 그리고 배설을 담당해준 배설기

관에 깊이 감사한다. 특히 이번 교육을 통해 무릎관절이 갖는 역할수행

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발목이나 발바닥도 얼마나 중요한 지, 또 그 근육

들의 역할까지도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멀리서 온 사랑하는 연인에게 물을 떠놓고 발 먼저 씻게 하고 그

물에다 세수를 한 사람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은 당신을 여기까지 오

게 해준 것은 바로 발 덕분이지만 미천한 곳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

한 발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평

상시 건강했던 목이나 허리의 역할도 등산도중에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

었다. 발바닥과 목과 허리에 감사한다. 그중 하나의 관절이나 근육이라

도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등산이라는 숭고한 작업에 참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그렇게도 산에 오르고 싶어했었던 것. 하지만 장애인

아닌 나는 멀쩡한 몸뚱이를 제대로 간수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하였다고 생

각하니 부끄럽기만. 또한 등산은 어떤 누구와의 경쟁이기에 앞서 자기 자

신과의 경쟁이자 종합예술이기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신력과

육체적 힘을 이처럼 종합적으로 구사하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스포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산은 체력과 지

력의 절묘한 조합에 의한 종합스포츠라고 하는가보다.


등산도중에는 산과 길에 온 몸과 마음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정신에 스트

레스가 파고들 여지가 전혀 없다. 그래서 불안과 스트레스, 성인병과 비

만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건강에 더할 나위 없는 운동이다. 또한 등산은

평범한 사람도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여유를 갖

게 하며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실천하는 멋진 산악인이 되게 한다.

65기 아버지에 66기 어머니를 둔 67기 효남이는 좋겠다. 나중에 나도 아

이들을 대구등산학교후배로 양성해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등산예찬론자

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지난 5주 동안 우리 동기생 모두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없이 형

님 누님 하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지만, 이제 발

길을 각자가 활동하던 곳으로 다시 돌려야 하고 정든 동기생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찔끔. 교육을 수료한다해도 앞으로 등산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이론적인 산악인에 불과하게될 것이다. 운전면허받고 그냥 장롱

속에 묵혀두는 것처럼. 그래서 실천하는 산악인이 되자는 대구등산학교

의 교훈은 나의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들의 등산은 계속될 것이다.

Mountaineering would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