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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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 2006/02/27 19:53:33, 조회수:2052 )
이름  

박종숙 (thtls67)

제목  

21기 후배와 금강산 동계등반

금강산 동계등반 후기,

2005년도 정규반 68기 교육 중에 내년 1월 동계등반 금강산으로 계획 중...
분단이 후 사상 두 번째로 금강산동계 등반 가는 대구등산학교
여태 기대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갈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 들었다.
정규반 수료 후,
대구등산학교 홈페이지에 '금강산 동계등반 모집' 모니터에 확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 행운이 온 것이다.
'동계반 이수한 자'란 단어가 마음을 들뜬 게 한 것은 참가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전 과목 수료한 내가 당연히 있는 것이다.
겨울의 꽃이라 했던가.
북한 관심가지는 이유는,
2004년 2월 전에는 나라사랑 국토사랑 모르고 남북종단을 계획을 했었고,
한라산에서 순례 중에 국토사랑을 느꼈고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걸음을 멈추게 된 것이 분단의 아픔을 느꼈고 백두산까지 헛꿈이란 현실을 알고는 다시 그 거리만큼 그 해 가을에 군민의 격려 속에 고령군청에서 발대식하고 부산→임진각까지 다시 도전 삼팔선에서 더 이상 걸어 갈 수 없다는 것을 또 아픔을 겪었던 것이다.
정말로 북한에 걸어 갈 수 없는 땅인가?
다행히도 이번 북한 동계등반 가서 왜 못 가는지?
직접 질문해봐야겠다.
금강산 동계등반 공식 발표이 후,
저녁마다 미친 사람처럼 비브람 신고 아이스 바일 쥐고 뛰었고 휴일에는 동문들과 빙벽훈련 하였고 또한 야행도보 20KG 배낭 메고 똘이(애완용)와 함께 열심히 하였다.
1월3일날, 동계21기 후배들 입학식 하던 날 교육생들 21명이었다.
1월8일날 의성군 도리골 인공빙벽(30M)동문들과 훈련하였고,
1월15일날 청송군 얼음골 인공빙벽(62M) 교육생들과 같이 1박2일 오전에 남들보다 몇 번 더 부지런히 얼음 깼다.
총동창회장 및 임원들 격려방문, 정규68기회장 및 대장 식사지원 받으니 같은 동기로써 고맙기만 하였다.
50나이에 체력이 부족하다고들 하지만 어릴 시절생각 한다면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게 자신도 기적이고 또한 건강회복 하니까 어머님은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좋아하신다.
"할 수 있다"는 늘 마음속에 두고 하니까 더 건강해 진 것 같다.
KBS방송국에서 여성PD분이 금강산 출발할 때 인터뷰와 영상촬영 하겠다고 제의도 받았다.
1월19일날 손꼽아 기다려졌다.
장병호(학감)씨 금강산 일정 및 행동요령 주의사항 등등 학교에서 설명 들었다.
외국보다 입국 출국 규제가 좀 심하다는 것을 들어봐도 알 수 있었다.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아내가 염려하는 말이 직장사표 내지 말고 잘 다녀오시라고 당부하니까 걱정이 되었다.
주어진 업무 미리 처리했지만 어떻게 되겠지 뭐...
1월19일 전날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분계선 넘어가는데 차질이 생길까봐 2시간 앞당겨 출발한다고 학교측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 하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방송국에서도 출발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오라고 한다.
어릴 적에 설 전날처럼 뒤척거리면서 잠을 설쳐야 했다.
남북종단 했을 때 남측고성분계선에서 이유 없이 울어야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만 하였다.
왜 못 가게 하는지?
19일, 거실에서 60L 배낭 앞에 놓고 사랑하는 가족사진 찍었다.
혹시나 내 행동이 잘못될까봐 싶어서...
어머님 와 아내는 "조심해서 다녀 오라" 하시면서 여비도 주신다.
여유 있게 나섰다.
무거운 배낭을 메었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21기 교육생, 동문, 강사, 배웅 나온 가족들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면서 KBS 인터뷰 등등 부산하기만 했다.
여동생 사촌누나가 배웅 해주니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했었다.
나도 남들처럼 어깨에 힘이... 배웅해 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밤11시 15분 중앙고속도로 캄캄한 적막 속으로 질주하듯 내달린다.

20일 00:20분, 금요일 별 반짝
안동휴게소 잠시 휴식 후,
빨려 들어가듯이 적막 속으로 내 달린다.
잠든 사이 강원도 주문진 항구 미래식당(강원연맹 전 산악회장)도착하여 생선 찌개로 아침대용으로 때운다.
장이 나빠 화장실 문제로 먹고 싶어도 많이 먹지 못해 배고픔을 참아야하는 불편함이 고민 중에 고민이었다.
06시20분, 남한 신고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렸는데 캄캄한 몇 불빛 외는 주위를 볼 수 가 없었다.
07시 되니까 주위 서서히 드러난다
우리일행을 안내할(유조장) 탑승, 남한분계선통과절차와 북한분계선 통과절차, 북한용어 주의, 북한요원 앞에서 행동주의 등등...
같은 민족인데 그렇게 규제가 많을까? 왜 사상이 다를까?
정치, 사회, 경제, 사회주의 다르다고 하지만 마음을 닫고 반세기를 서로 총칼 들고 경계하고 살았다는 게 나로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측분계선 통과절차가 까다로웠다.
휴대폰 압수, 무거운 배낭 메고 짐 검사, 몸 검사 한 후 조금 타고 가다가 북측분계선도착 똑같이 절차 밟으니 일행들은 곤혹 아닌 곤혹이었다.
남측절차업무는 부드럽고 밝은 표정인 반면 북측절차업무는 눈매가 날카롭고 말투가 억압적이었으며 분위기가 딱딱했다.
"여보시라요 동무, 소리가 난다기요" 북한양반(군인) 인상이 사납다.
검사대 통과하니까 "삐 삐 삐" 소리난다 다시 반복해 봐도 역시...
"주머니 다 내노시라요" 성질을 내듯이 말한다.
아닐까 다를까 가슴속 주머니에 손 난로가 금속 탐진 기에 걸렸다.
"왜 말을 듣지 않습니까" 멍~ 쳐다보기만 했다.
말로만 들었던 농촌 모습 실제로 보니 60년대에 어린 시절 살았던 모습 같았고 소달구지와 자전거만 보였다.
발전 없는 이북이었다.
서리 낀 차창을 닦으면서 유심히 보니 300M 거리마다 초소 없이 북한군인 한사람 서 있었는데 한 손에 빨간 깃발 잡고 부동자세로 남한 관광버스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앳되 군인 방한복도 입지 않는 채 추워 보이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벌판 가로 질려 달리니까 금강산 현대아산 시설지구 보였다.
북한고성에는 김정일위원이 정주영에게 특혜지역...?
온정각 숙소 머물지 않고 바로 구룡연 방향으로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로 올라갔다.
가이드가 뭐라고 설명하였지만...
고려역사 있는 신계사란 절이 있는데 절 같지가 않았다.
9시경쯤 목란관 입구 1호 관광버스가 눈길에 살짝 좌측으로 미끄러지면서 쳐박혀 뒤 부분이 약간 찌그러졌다.
무식하게 생긴 도시락까지 받으니 배낭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비봉폭포까지 올라가는데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일행들도 힘들어하였다.
무박, 배낭무게, 배는 고픈지만...
곤욕스러워도 괜찮다.
비봉폭포 10시 도착
땀의 의해서 그럴까,
한기가 몸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비봉폭포는 생각보다는 직벽은 아니었다. 130M 높이지만 빙벽은 마음 들지 않았다.
여름에는 떨어지는 낙수가 봉황새처럼 떨어진다 하여 비봉폭포라고 지었다고 한다.
북한 구조요원들은 빙벽장비 처음 본다고 한다.
대등강사 차진철씨가 자세히 가르쳐 주었지만 해보려고 하는 의욕은 대단했다.
50M 쯤 빙벽 타고 올라가니까 시간제한 때문에 하강하라고 한다.
15시까지 등반허용이라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아쉬움만 남긴 채 돌아서야만 했다.
온정각으로 내려와 구룡마을이라는 곳에 숙소 배정(도영환, 허승호, 박종숙)2606호 배정 받고 배낭 갖다놓고 고성 항 회 집으로 향했다.
빌라 같은 집이 있었는데 그쪽 방향으로 촬영금지라고 한다.
불빛이 없었다.(사람이 살지 않는다 한다)
회 집 들어서니 일렬로 서 있는 아리따운 북한 아가씨들"반갑습니다" 반갑게 맞이하지만 나중에는 의심들이 많아 여유같이 카메라 조사 당했다.
예쁜 다고 아가씨 얼굴 많이 찍었는데...
회는 직접 자연바다에서 채취하여 제공 하다고 한다.
해삼 멍게 등등 싱싱하고 입맛을 당기게 한다.
한잔 더 마시고 싶었지만 시간 통제 때문에 숙소에 일찍 들어가야만 했다.
듣던 말 그대로 살 동네가 아닌 다.
숙소에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내일 일정을 기다려보면서 뜨끈한 방에서 늘어지게 잔다.

21일날, 토요일 맑음
새벽공기 귀가 떨어져 나갈 듯이 억수록 차갑다.
06시기상, 교육생들은 05시기상 온정각 주위 구보했다고 한다.
주위에 뛰어보았지만 너무 추워서 조금만 뛰었다.
오늘은 호기심 많은 구룡폭포 빙벽,
나는 꼭 등반해야한다는 마음을 갖고 배낭을 꾸렸다.
옥류동 영상 담으면서 천천히 올랐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능선봉우리들 리지 등반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만약에 통일되었을 때 늙어 못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아~~~ 슬프다
갈림길에서 상팔담 방향으로 다녀올까 하다가 빙벽미련 때문에 포기하고 구룡 정각 방향으로 올랐다.
그런데 소변이 급해 화장실로 갔더니 1달러 내놔라 한다.
전자카드도 안되고 달러는 없고 원은 잔돈이 없고 아무데나 거시기 내밀고 볼일...
헉, 북한요원이 빠이 본다 얼른 거시기를 집어넣었다.
남측 같으면 그냥 시원하게 내밀면 되는데...
정각에 와서 일행들에게 그런 얘기했더니 강사 이용인씨에게 1달러 신세졌다.
구룡폭포 보니까 직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달려가서 오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지만 기라성 같은 강사와 동문들 그리고 교육생들, 감히 내가 오른 수 있을까?
등반하기 전에 둘러앉아 산세를 구경하면서 점심을 먹고 장비 착용했다.
가까이 가니 뒤로 넘어갈 듯이 높아 보였다.
높이가 70M 된다고 일러준다.
교육생들은 강사의 지시에 따라 "하나 둘""광 광" 아이젠 찍으면서 열심히들 한다.
훈련 모습을 찍기 위해서 중간쯤에 올라가게 최기환(훈련부장)씨에게 요청했더니
"이번에 형님이 오르세요"
"머~ㅇ"
기환씨가 행운의 한마디가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일 찾던 중 마음에 드는 바일 선택하여 찍어 붙었다.
낙빙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떨어졌지만 정신 없이 찍어 올랐다.
70M 높이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날아가듯이 단숨에...
나는 개골산(금강산은 겨울에는 개골산이라 부름) 구룡폭포 오른 영광을 맛보았다.
여름에는 용이 몸부림치듯이 떨어지는 낙수 연상하게 되는데 폭포 위에 올라서 보니 둥그렁게 패인 탕이 있었고 주위에는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다정한 누님처럼 느껴졌다.
기술등반회원 박욱현씨외 4명 그리고 교육생 2명이 대구등산학교에서 최초로 구룡폭포 빙벽 분단이 후 초등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체장애인이 최초 아닌가 싶다. 훈련부장이 그런 생각에 날 선택했을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온 것이 아니다
딸내미가
"엄마"
"아빠가 망치 들고 매일 왜 저려지?"
꿈에서라도 남들처럼 해보겠다고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굉장히 추울 줄 알았는데 약간 칼바람이 있을 뿐 그리 춥지는 않았는데 흥분해서 춥지 않았나 보다 다른 대원들은 추운 모습...
바로 머리 위에 가까이 금강산의 비로봉(1638M) 확실하게 보였다.
녹슨 난간이 보였다.
분단 전에 많은 등산 인이 올랐다는 근거 아닌가
사진 몇 장 찍고 나니까 기온 차 때문인지 방전되려고 한다.
시간 없다고 하산하라고 무전연락 받고 하강하는 중에 "잠깐" KBS카메라 찍아댄다.
동문들에게 미안한 마음 미소를 감추려고 애써 보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선배 후배 정말 죄송합니다."
2006년 1월 21일 구룡폭포빙벽 등정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구룡폭포 밑에서 단체기념사진 찍고 또 찍었다.(매일신문, 금복주회사, 대등)
북한요원이 지켜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에 철수해야 한다고 한다.
장비해제하고 미끄러운 하산눈길 이마에 땀이 맺힌다.
비브람신발 밑창이 없기 때문에 빙벽화 생각이...
내년에는 어렵겠지만 아이젠과 빙벽화 장만해야겠다.
엽상욱씨(구조위원)와 내려오다가 목란관에서 북한 소주 한잔 마시니 사는 게 이런 맛이다.
주머니여유가 있다면 쏘고 싶은데...
학감 오셨기에 보신탕과 소주 조금 쐈지만 보신탕 한 그릇 슬쩍 보신했다.
곧바로 온천장으로 직행, 뜨끈한 온천으로 피로를 풀었다.
1월21일 억수로 좋은 날, 생애에 구룡폭포빙벽 등정 기분 만점이다.
석식 후 포장마차에서 강사와 동문들이랑 한잔 있다고 한다.
동문들과 같이 포장마차 갔는데 실내마차였다.
18년 전에 인천산악연맹 활동 하셨던 최석보이사님, 여기서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이야 너무 반가웠다.
로얄토토(주) 산악회장으로 활동 중에 지도자 세미나 교육받을 때 인연이 되었는데...
우리일행 관계로 개인적으로 긴 얘기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참새구이, 어릴 적에 동네 형들이 참새 구워 먹을 때 얻어 먹어본 기억에 술과 함께 좀 먹었더니 다음날 속이 좋지 않았다.

1월22일 일요일 맑음
남쪽으로 귀환하는 날, 사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등반 외는 북측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속은 좋지 않았지만 금강산 식후경이라 했던가 아침식사 억지로 배속에 밀어 넣었다.
옥류관에서 해금강 삼일포 코스 전용 관광버스 6대 출발했다.
대등일행 중에 일부는 만물상, 21기 교육생은 옥류동(비봉폭포) 빙벽훈련 들어가고 나머지 동문들은 해금강과 삼일포 관광 갔다.
해금강 관심보다 북한 주민 생활상이 더 관심이 갔다.
소달구지 다닐 정도로 비좁은 눈길도로 아슬아슬한 커브 길,
낙후된 농촌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뒷 칸 자석 창문 가까이 앉아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서리 때문에 볼 수가 없기에...
그런데 뒤에 앉은 산 친구(카라코람산악회 소속 같음?) 농촌 모습을 디카에 담아나 보다.
북한요원한데 카메라 검열에 걸렸다.
박병용(총동창 회장)씨는 찍지도 않았는데 압수 당해 디카에 신경 쓰여 편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나는 운 좋게도 압수되지 않았다.
정말 북한 주민생활상 발전 없는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관광버스 지나가면 손 흔들고 해야 하는데 자전거 타고 가다가 몸을 숨기는 모습, 또는 집 뒤로 슬그머니 피하는 모습, 나무 뒤에 돌아앉아 있는 모습들이 남과 북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는 도로 200M마다 북한군인 빨간 깃발 들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앳된 군인들 바람막이도 없이 너무 추워 보였다.
40분 달렸을까
해금강주차장 도착하니 바닷바람 칼바람처럼 따가웠다.
남쪽에도 해금강 있는데 여기도 해금강 참 멋있다
해송과 기암절벽을 디카에 담으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찍지 말라고 몸으로 막는다.
군사지역이라고...
저 멀리서 혼자 서 있는 여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자모습이 찍혀 있으면은 엄청난 과태료 물게 된다고 한다.
낯익은 북한구조요원(최동 동무) 또 만나게 되어 많은 얘기 나누고 기념으로 아끼던 카라비너 하나 줬더니 고맙다고 웃는다.
다른 물품 건네 주면은 사양하더니만 장비는 사양하지 않았다.
가파른 내리막빙판계단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 미끄러질세라 신경이 쓰였다.
큰 바위벽에 김일성마누라 김정숙 선전문구 빨간 글 도배 해 놓듯이 새겨져 있었다.
장군대를 지나 얼어붙은 호숫가에 단풍관이 새로 지은 건물이 있었다.
소변보기 위해 건물 뒤로 갔는데 북한군인이 경계하듯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일부러 말 좀 걸어 보려고 가까이 갔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부동자세로 경계한다
단풍관 안에는 막걸리(한병3달러)와 도루묵구이(한접시7달러)를 판매, 생각보다 비싸다.
동문일행들은 먹고 있었지만 모르채 그냥 나와 북한구조요원 같이 양지쪽에서 담배를 나누어 피우면서 여기 너무 좋다고 하니 "좋지요" !!!
오늘 점심은 말만 들어온 평양냉면 옥류관에서 먹는다고 하기에 기대를 했다.
냉면과 녹두지짐 맛...
실망했다.
솔직히 맛이 없었다, 차가기만 했다 여름에는 어떨려지?
남한에서 평양냉면 장사했다가 망했다 소리 많이 들었다.
교육생들은 아직 13시까지 도착하지 않아 15시까지 기념품과 뱀술 샀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어디 마음대로 돌아다니기가 편하지가 않아 양지쪽에 쪼그리고 앉아 닭졸음처럼 졸았다.
(휴대폰이 없으니까 답답하고)
남한 분계선 넘어갈 때는 대낮이니까 확실하게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남한업무요원, 북한업무요원 비교해 보니까 남한요원이 미남미녀였다.
내가 남한에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한 종숙인간 깨달았다.
가진 것은 없지만 두 번 행복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주문진 항구 회집들러 저녁 식사겸 소주 한잔 푸짐한 생선찌개 남한의 자유였다.
밤새도록 달려 보라 기사 마음대로...
퍼지게 자고 나니까 대구 시민운동장 동문 출발했던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번 금강산 동계등반을 위해 수고하신 대구등산학교 학감님외 진행위원 그리고 21기 교육생 후배를 위해 선배동문들과 같이 참석격려 해주신 회장님외 임원님 이 자리 빌어 감사 드립니다.
또한 21기 후배를 위해 애써 주신 최기환 훈련부장 및 실기 강사께 수고했습니다.
분단이 후 대구등산학교 산악인이 금강산 구룡폭포 빙벽 초등 했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약한 모습 극복하기 위해 늘 주님 곁에서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리라.
"장애인도 할 수 있다"
실천하는 산악인 21기 "대등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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