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녕하십니까?
경일대학교 산악회 차진철입니다.
2003 가셔브롬 원정대가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의 내용은 대구등산학교의 대등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두서 없는 글입니다만,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003 경일대학교 가셔브롬 원정대
가셔브롬 1봉(8,068m), 가셔브롬 2봉(8,035m) 8,000m 2개봉 연속 등정기
작성자 : 차진철 원정대장
등반기간: 2003년 5월 18일 ~ 7월 27일 (71일간)
경일대학교 개교 40주년기념 및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성공개최를 기원해 원정대는 꾸며졌다
5월 18일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태국의 방콕국제공항을 경유,
5월19일
현지의 행사에서 지정한 숙소에 도착해 긴 비행의 피로를 풀었다. 정부 연락관과 미팅 후 관공성 브리핑등 현지 업무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3일까지 완료하였다.
5월 24일
라왈핀디를 출발하여 스카루드까지 1박 2일간의 자동차 카라반 일정에 들어갔다. 인더스강 줄기를 따라 뻗은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 장마기간이었으므로 많은 곳이 산사태 등으로 길이 중간 중간 끊어지곤 하였다. 5시간 정도를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반대편 스카루드에서 내려온 차량을 이용하여 25일 저녁 10시가 넘어서 스카루드의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카루드은 K2, 가셔브롬Ⅰ・Ⅱ, 트랑고타워등 발토르빙하에 위치한 산들은 등반하고자 하는 팀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등반의 마지막 최종적인 점검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부족한 식량과 장비등을 구입, 포장하고 한국에 보낼 엽서를 발송하였다.
5월28일
여러 대의 짚차에 짐과 대원들이 탑승하여 도보카라반이 시작되는 아스꼴리까지 자동차카라반을 하게 되었다.
5월 29일
본격적인 도보카라반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현지 포터를 고용하는 중대한 일을 결정해야만 했다. 1인당 25kg의 짐을 분배하여 확인절차를 마치고, 한국대원들은 10시가 넘어서 첫날의 목적지인 졸라(3,200m)로 출발할 수 있었다.
5월 30일
졸라를 출발하여 둘째 날 막영지인 빠유(3,500m)까지 가는 길은 작열하는 태양아래 모래밭길을 걸어야 하는 너무나 고통의 시간이었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형용할 수 없다. 저녁 6시 빠유에 도착 후, 막영지 선택의 실수로 텐트를 다시 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하루를 머물고 말 막영지였다면 그만이었겠지만, 약하게나마 시작되는 고소증세와 포터들의 식량준비를 위하여 캠프지 중 유일하게 물과 나무그늘이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위치선택이 잘못하여 2번 텐트를 치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다.
6월 1일
이른 아침 우루드까스(4,100m)로 출발, 2시간정도 지나자 빙하지대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빙하지대의 특성상 돌들은 모두 날카로웠으며, 너덜지대에서의 걸음은 매우 더뎠다. 빙하물이 녹아 흐르는 곳에서는 소리가 하도 요란해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낙석 소리도 들리지 않으므로 항상 그 주위를 지날 때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한다.
6월 2일
전날 저녁부터 일부 대원들이 고산증세로 인하여 고로Ⅱ(4,500m)까지의 길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고통들을 참기위해 펜잘과 이뇨제등으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6월 3일
K2가 보인다는 콩코르디아(4,88m)까지 가는 길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빛나는 벽이란 이름을 가진 가셔브롬4봉을 정면으로 보면서 가는 즐거움은 잠시나마 고소의 고통을 잊게 해 주었다.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인하여 6월 4일 운행을 할 수 없어 하루를 쉬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곳 포터들은 등반대의 사정으로 휴식할 경우에는 임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6원 5일
샤그린(5,000m)에는 정오가 조금 지나 도착할 수 있었다. 대원들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내일이면 베이스캠프(BC 5,200m)에 입성한다는 기대감에 대원들 모두 고통을 견디는 눈치였다.
6월 6일
정오경에 드디어 BC에 도착했다. 그동안 고생한 포터들의 임금계산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며 고소증세로 운행속도가 느린 김영웅대원을 우리 팀의 가장 선배님이신 이상률부대장이 데리고 뒤늦게 BC에 도착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라 저녁에는 BC입성을 겸해서 파티를 열 생각으로 아침에 못 먹은 미역국과 저녁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체력이 좋은 재학생 대원이 고소증세로 컨디션 난조로 드러눕더니, 맥박수가 200가까이 올라가고, 혈중산소포화도(SPO2)가 97이 정상인데 50이하로 떨어지며 심각한 호흡곤란과 전신경련을 일으키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
한왕용팀의 비상용 산소를 빌리고 외국팀의 가모백(휴대용 가압조절탱크)에 넣은 다음, 부근 파키스탄 군부대 군의관에게 대원을 보이자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 밤을 보내고 나서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급히 구조 헬기를 요청한 다음 군부대로 후배대원을 들것으로 옮겨 군의관에게 보이자, 놀라면서 혈관확장주사를 맞혔다. 헬기 후송을 준비하며 나는 참으로 암담하였다. 40년만에 처음으로 추진한 해외 원정이 등반 시작도 하지 전에 여기서 끝나는 것 같아 너무나 허탈하거니와 이러다 후배를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등반에 대한 마음보다 후배를 데리고 갈 생각만 머리에 꽉 찼다.
대원 7명 가운데 원정대장을 맡고 있는 나와 배영록등반대장 외에는 고산 경험이 없기 때문에 등반은 사실상 절망적이었다. 만약 내가 김영웅대원을 데리고 내려간다면 더 암담한 상황이었다. 그런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상률부대장께서 사경을 헤매는 후배를 데리고 헬기로 철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6월 8일
어제의 힘든 하루를 뒤로 하고 남은 5명은 내려간 두 대원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각오로 이른 아침부터 C1(5,900m) 건설을 위한 힘찬 첫발을 내딛었다. BC에서 C1까지는 아이스폴지대와 크래바스가 많은 구간이라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운행을 시작해야 한다.
처음운행이라 7시간 30분만에 C1에 도착할 수 있었다. C1까지 5명이 출발했지만 2명의 대원은 고소증세의 일종인 무기력증으로 BC에 되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잦은 악천후로 인해 C2(6,500m)설치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차례 우리는 고소순응을 위해 C1을 오르내렸다.
등반 8일째인
6월16일
드디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러 보고서에서 자주 본 바나나릿지와 라이프릿지를 넘어 고도 6,500m지점에 무사히 C2를 건설했다. C2로의 등반 또한 몇 차례의 고소순응을 거쳤다.
6월 24일
BC를 출발하여, C2에서 1박 하였다.
6월 25일
C3(7,100m)를 설치하고 7,400m에 C4를 설치할 계획이었는데, 계획을 변경하여 7,400m에 C3를 설치후 정상 공격을 시도하기로 했다. 25일 예상보다 늦은 오후5시경 도착 후 캠프 설치를 완료했다.
6월 26일
새벽 3시경, 드디어 가셔브롬2봉(GⅡ봉) 등정의 날.
밤새 텐트를 흔드는 바람소리에 잠못이루다가 촬영장비와 간단한 비상식량만을 챙겨 정상 등정 길에 나섰다. 텐트 밖으로 나서자 살이 찢어지는 듯한 추위와 어둠이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어둠을 친구삼아 3시간정도 등반을 하고 나니, 온 몸이 굳어지고 손발가락에 극심한 통증과 감각이 없어지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드디어 햇빛이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이중화를 벗어 손,발가락등 감각이 무뎌진 곳을 30분간 맛사지했다. 증상이 조금 호전되자 천천히 남은 마지막 구간 정상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내딛었다. 11시 30분쯤 어느 일순간 K2봉이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정상(8,035m)이었다. 발아래 흰 눈으로 뒤덮힌 산들이 서로 키재기라도 하듯 우뚝 솟아 있었고, 눈이 녹아 검게 드러난 빙하지대가 마치 잘 닦여진 도로처럼 보였다.
GⅡ 정상 등정 후 하산 길은 나로 하여금 고통과 인내를 요하는 길이였다. 캠프(7,400m)에 도착 후 더 이상 하산을 못하고, BC에 무전교신을 하였다. 하지만, 벌써 나의 마음은 GⅠ(가셔브롬Ⅰ봉, 8,068m)에 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GⅠ봉 등반 신청을 부탁하고 내일의 하산을 위해 깊은 잠에 들었다.
6월 28일
정상 등정 후 힘든 하산이었다. 전 대원이 무사히 BC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BC에서의 휴식을 가졌다. C4에서 신청한 GⅠ봉 입산 신청을 허락받았다. 이틀간의 휴식! 그렇게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이곳에서의 기상변화 때문에 마냥 완전한 회복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후배대원들의 컨디션은 나아지질 않았다. 회의 끝에 GⅠ봉의 공략 계획은 알파인 스타일로 한번 만에 정상까지 시도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GⅡ봉 등정 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이성재대원은 BC에 남고, 나와 배영록등반대장이 GⅠ봉을 등반하기로 했다. 그 동안 나머지 재학생 2명은 GⅡ봉에서 고정 로프와 길이 잘 뚫린 C2까지 오르내리면서 고소적응에 나서기로 했다.
가능하면 후배들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 주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그러하지 못함이 못내 아쉽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우리가 GⅡ봉을 등반하는 동안 다른 한 팀의 스페인대가 GⅠ봉 등반 중 위험하다는 재패니스 꿀르와르를 넘어 C3까지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장비와 식량을 재정비한 우리는 그들을 찾았다. 가능하다면 그들이 먼저 설치한 로프를 우리와 함께 사용하며, C3 후에 필요로 하는 장비 일체와 앞으로의 루트 개척을 함께 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흔쾌히 응해 주었으며,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시즌 초등은 그들이 먼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남자 다섯에 여자 둘이었다. 여자 대원 중 1명은 아르헨티나 멘도사 출신의 등반가이드였고, 키 큰 여자 1명이 의외로 원정대장을 맡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시즌 초등은 그들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들 또한 알파인 스타일로 모두가 함께 정상등정에 나설 거라고 한다. GⅠ봉은 결코 쉬운 산이 아니다. GⅡ봉과 달리 마지막 C3지점부터 정상까지는 경사가 심하여 고정로프 없이 등반하기에는 심적 부담이 매우 큰 곳이란 것을 여러 원정보고서를 통하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며칠 전 GⅡ봉 정상을 밟았던 그 뜨거운 열정과 감격이 조금도 식지 않았다. 모두들 정상등정에 대한 확신에 꽉 차 있었다.
7월 3일
국내에서 대구 하계U대회 준비로 바쁜 업무 중에도 늘 원정대에 기상정보를 알려 주시던 박대희선배님께서 기상정보를 보내 오셨다. 원정 때마다 고생해 주시는 선배님의 후배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에 머리가 숙여 진다.
기상도의 일기예보에 따르면 5,6일이 최상의 날씨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쉴 틈도 없이 다시 미지의 눈바다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재학생대원들을 제외한 나 차진철원정대장과 배영록등반대장, 다와셀파, 고소포터 니사르 이렇게 4사람은 배낭에 짐을 나눠 메고는 다시 GⅠ봉을 향해 이른 새벽 BC를 출발해 C1을 향했다.
GⅠ,Ⅱ봉은 BC와 C1을 같이 사용하기에 많은 시간과 장비 및 식량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장점과 입산료 인하로 인해 우리를 비롯한 많은 원정대가 2개봉 연속등정을 노리고 있었다.
날씨는 예상대로 안정적이어서 C1과 C2로 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지 않았다. GⅡ봉으로 나선 재학생대원 2명이 무사히 C2에 도착했다는 무전을 받았다.
GⅠ봉의 C2(6,500m)는 C1에서 3시간 남짓 넓은 프라토를 지나 GⅠ,Ⅱ봉 사이의 꼴안부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도착한 C2에는 스페인 대원 3명이 어제 도착해 우리보다 조금 앞선 2명의 여자 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7월 4일
BC에 헬멧을 두고 오는 실수를 저질렀다. 헬멧은 재패니스 꿀르와르 등반 시 꼭 필요한 장비인데 짐이 많아 미처 챙기지 못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다른 팀이 등반하기 전 먼저 등반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같이 출발하였다.
대원 모두가 초행길이라 재패니스 꿀르와르를 지나치고 말았다. 멀리서 뒤따르던 스페인 팀이 손짓을 했다. 우리고 망설이면서 지나쳤던 그 곳이 바로 꿀르와르 초입이었던 것이다. 초입 길은 완만하고 폭이 넓어 지나치기 쉽고, 위쪽은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 암벽지대가 있어 등반코스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우측 위쪽으로 쭉 뻗은 암벽을 따른 설사면 300m정도 올라서서야 꿀르와르 등반 로프가 눈에 들어 왔다. 눈과 바람에 손상된 여러 갈래의 로프들이 주인 없이 끊어진 채 흩날리고 있었다. 그러한 로프들 사이로 간간이 새로운 로프들이 우릴 반겼고, 허술해 보이는 녹슨 하켄과 부서진 바위틈 사이로 얽어맨 로프 확보지점, 떨어지는 바위조각, 쓸려 내리는 얼어 붙은 눈덩이 때문에 등반 내내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꽤 까다롭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실수로 미끄러지면 몇 백미터 아래로 순식간에 사라질 위험이 계속되었다.
아마 3~40m씩 8피치 정도를 오른 것 같았다. 낡은 로프들이 섞여 중간에 믿지 못할 만큼 헤진 로프들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등반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하나의 큰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새로이 설치할 로프도, 장비도 우리에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을 로프에 매달리고 추위에 떨면서 견뎌낸 끝에 안전하게 C3에 도착할 수 있었다.
C3(7,100m). 바람이 심하게 불어 이전에 스페인 팀이 설치했던 텐트는 찢기고 부서져 바람에 펄럭여 함께 뒤엉켜 버린 속이 훤히 드려다 보였다.
뒤이어 도착한 스페인 팀은 수습을 해 보려 하지만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경험 상 이런 히말라야에서 대부분의 텐트는 폴대가 부러지고 여러 갈래로 찢기어 눈과 함께 파묻히기 때문에 재사용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행히 그들은 다른 텐트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조금 더 운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팀이 이곳 7,100m에서 C3를 설치하고 잠시 쉬었다가 밤 10시경에 정상 등정을 시도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운행거리가 너무 멀어 편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다시금 이렇게 장시간 동안 고소와 추위, 수시로 바뀌는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노출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 위험한 상황에서 3시간여를 더 올라와 우리는 우축 암벽과 설사면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초입부에 경사진 눈사면을 깎아 약 7,200m에 C3를 구축했다. 아마 새벽에 운행한다면 4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인데 우린 그 시간을 번 것이다.
7월 5일
새벽, 시계는 0시를 향해 느릿느릿 돌고 있었다. 텐트 깃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텐트 안은 허옇게 눈이 내린 것처럼 얼어붙었고, 바닥에선 냉기가 솔솔 새어드는 것이 여간 추운 것이 아니었다. 약 3시간을 웅크리고 졸았던 탓인지 온 몸은 굳어 쉽사리 침낭을 떨치지 못했다.
텐트 밖 멀리서 불빛이 요란하게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스페인 팀이었다. 아마 전날 밤 9시경에 출발한 것 같았다. 바람에 눈이 엄청나게 날렸다. 그들을 반가이 맞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고는 우리도 함께 희미하게나마 어둠을 밝히며 정상을 향했다.
시려오는 발끝과 손끝은 동상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최상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강한 추위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침 해가 조금이라도 빨리 뜨길 빌면서 기다릴 수밖에는....
손과 발이 감각을 잃어 가기 시작할 무렵, 햇살이 뒤에서 비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등반 중 정상을 밟는 다음으로 기뻤던 것 같다. 위험천만한 그 길을 로프도 없이 각자의 피켈과 아이젠만을 의지하고 올라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런 무모한 행동으로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사실이 눈앞에 둔 정상이 그리 반갑지 만은 않았다.
정상을 눈앞에 눈 30분전 지점에서 내 눈앞에 갑자기 검은 물체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순간 나는 엉겁결에 손을 뻗었다. 검은 물체는 나의 우측을 스쳐 지나갔다. 추락한 것은 다름 아닌 스페인대의 남자대원이었다.
몇 번의 반동을 하며 미끄러지는 물체는 우리가 출발한 C3지점까지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오금이 저리고 숨이 막히며,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정상으로 향하는 대원들을 향해 목청껏 소리쳐 불러 보았지만, 바람 소리로 인해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질 뿐이었다.
10분 정도를 한자리에서 갈등과 번뇌에 휩싸였다. 결론은 혼자 내려가기 보다는 올라가는 것이 안전하고 빠르다는 판단을 내린 후에야 발을 뗄 수가 있었다.
7월 5일
현지시각 8시 30분 배영록등반대장이 드디어 정상에 섰다. 나는 20분 늦은 8시 50분에 정상에 합류할 수 있었다. 아~! 이 순간의 감격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혹독하리만큼 자기 자신을 다스리면서 이 곳 히말라야를 찾는 우리 산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축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경일대학교 산악부 40년 역사의 새로운 시작의 구심점이 다시 한번 시작된다는 벅찬 감동과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선배님들의 뜨거운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되며 도와주신 선배님들과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 표현할 길 없었다.
나는 정상 도착 후 “영록아! 방금 스페인 팀 한 명이 밑으로 날랐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BC에 무전으로 등정소식을 전하며, 스페인 팀 사고 소식도 알렸다. 안자일렌 로프는 정상부의 위험구간의 하강 시 고정해 사용했기에 내려 갈 때는 각자 자신만의 아이젠과 피켈에 의지한 채 조심스레 한 발 한발 내딛었다.
하산 길은 눈을 동반한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얼어붙은 눈사면을 타고 눈과 얼음 알갱이들이 얼굴을 괴롭혔다. 몰아치는 강풍에 하산 길은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뒤에 C3에 도착한 후 배영록등반대장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7,500m지점을 막 통과 했을 때, 스페인 팀의 아르헨티나 여자대원이 갑자기 머리 위로 휙~하니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배낭이려니 했단다. 그러나 바위에 부딪히면서 다시 튀어 오르는 모습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불과 1시간 사이에 함께 등반한 2명이 우리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다만, 그들이 보여준 열정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고, 다음 세상에서는 더 많은 행복을 누리길 진심으로 빌어 주는 일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2개봉 연속등정, 국내 단일대학산악부 최초의 등정 성공, 이러한 것들이 후배를 헬기에 실어 보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갚은 듯 했는데...
BC에 도착부터 또다시 피 마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GⅡ봉을 등반중인 후배 2명이 C3(7,100m)지점에서 폭설 속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 이틀 뒤에는 무전까지 끊기고 말았다. 고립 6일째 되는 날, C2로 가는 바나나릿지 상에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구조를 위해 하루 일찍 출발한 배영록등반대장에게서 무전이 왔다. 대원 모두가 무사하다고, 그리고 피켈로 눈에 파묻힌 텐트를 파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격려차 BC에 오신 우리산악회 성기환고문, 후배들이 걱정되어 다시 오신 이상률부대장등 BC에 모인 모두가 무전의 희보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그렇게 엄청난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들이 우리를 비껴갔다. 그것은 아마도 가셔브롬의 여신이 우리를 돌보았기에 가능했다고 생각되었다.
이번 원정대가 성공하기까지 많은 선배님들께서 보내 주셨던 애정과 도움, 그리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대원들이 가졌던 열정과 도전의식이 이 모든 것을 완성하고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앞으로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성공했다는 기쁨에 머물러 자축에 그치지 않고, 경일대산악부의 화합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더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밖으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산악부가 되길 기대한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OB, YB 모두가 할 일일 것이다. 경일대 산악부 화이팅!!
GⅠ봉(8,068m)등정 : 차진철 원정대장, 배영록 등반대장
GⅡ봉(8,035m)등정 : 차진철 원정대장, 배영록 등반대장, 이성재 대원
<원정대 일정표>
5월 18일 인천국제공항 출발
28일 아스꼴리
29일 카라반 시작, 졸라 도착
30일 빠유(3,500m)
6월 1일 우루두까스(4,100m)
2일 고로Ⅱ(4,500m)
5일 샤그린(5,000m)
6일 베이스캠프(5,200m)
8일 1캠프(5,900m)
16일 2캠프(6,500m)
24일 3캠프(7,100m)
26일 가셔브롬 2봉 정상등정(8,035m)
28일 베이스캠프 철수
휴 식
7월 3일 베이스캠프 출발
4일 재패니스 꿀르와르 올라가 3캠프 설치(7,200m)
5일 08:30 가셔브롬 1봉 정상등정(8,068m)
5일 2캠프
6일 베이스캠프
7월 27일 인천 국제공항 도착
<2003 경일대학교 가셔브롬 원정대원 명단>
원정대장 : 차진철 (건축학과 85학번)
부 대 장 : 이상률 (공업화학과 74학번)
등반대장 : 배영록 (기계공학과 94학번)
대 원 : 이성재 (전자공학과 97학번 / 회계)
김영웅 (도시정보지적공학과 98학번 / 식량)
정경식 (도시정보지적공학과 98학번 / 촬영, 장비)
신민호 (도시정보지적공학과 02학번 / 의료)
<차진철 등산 이력>
차진철 (CHA JIN-CHOL 38)
1985년 영남이공대학 산악부 입회
1990년 경일대학교 산악부 입회
1991년 북미 맥캔리 등반
1991년 구소련 코뮤니즘(KOMMUNNIZM, 7,495m)등정
1992년 동계 일본 북알프스 종주등반
1994년 초오유(CHO OYU, 8,201m)
시샤팡마 중앙봉(CHISHAPANGMA, 8,010m)
2개봉 연속등정
1995년 중국 골륜산맥 옥주봉 등정(6,178m)
1996년 충모강리(QUNGMO KANGRI 7,048m)
릉보강리(LOINBO KANGRI 7,095m)
2개봉 연속 세계 初등정
2000년 초모랑마(CHOMOLANGMA, 8,848m)등반
2000년 남극
빈슨매시프(MT, VINSON MASSIF 5,140m)등정
2003년 가셔브롬1(GASHERBRUN1 8,068m)
가셔브롬2(GASHERBRUM2 8,035m)
2개봉 연속등정
현) 영남이공대학 산악회 OB회원
경일대학교 산악회 OB회원
대구광역시 산악연맹 등반기술이사
대구등산학교 강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