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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 2006/09/05 11:18:08, 조회수:1864 )
이름  

이상승 (sang121234)

제목  

갈 수 없는 산



- 갈 수 없는 산 -


몇 해 전 일이다. 그날 우리는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고 밤바람이 스산하게 몰아치는 태백산 중턱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싸락눈이 여기저기 몰려있는 언 땅에 텐트를 친 후 버너에 불판을 올려놓고 삼겹살을 굽으며, 고기가 익는 족족 집어다 야금야금 먹는 재미로 그 밤을 보냈다. 여럿이 둘러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옛이야기 도란도란 거리는 멋은 밤 산행만이 갖는 쏠쏠한 추억이다.

아마 영하 십도는 넘었지 싶다. 치기가 남아 있던 때라 방한모에다 약간 도타운 겉옷만 걸치고, 매트로스 하나 달랑 엉덩이에 붙인 채였다. 누구 하나 먼저, “추우니 안에 들어가자.”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동계산행을 최고의 가치로 쳐주는 치들이니, 시시한 추위에 굴복해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수치로 여겼던 것이다. 성골은 역시 성골다워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그 무렵, 한 달째 금주를 하고 있던 참이라 곁에서 술을 권해도 먹지 않고, 고기만 부지런히 집어다 입안에 쑤셔 넣고 있었다. 소주 서너 잔 마시면 기분이 그럴 수 없이 좋아지고 몸이 훈훈해 지련만, 유별난 끈질김으로 참아 넘기고 있던 터였다. 참자. 참는 것이 약이다 라고하며.

이튿날 아침, 북쪽 능선으로 출발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작은 절을 몇 개지나 천제단에 도착했다. 민족의 성지치곤 볼 품 없는 밋밋한 산봉우리 한켠에, 돌로 쌓아 만든 신단에다 약간의 제물을 차려놓고 단군 할아버지께 술을 따라 올리고 절을 했다.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도 음복술 한 잔 마시지 않는 나의 독한 오기랄까, 샌님의 꼬장꼬장함이랄까. 아무튼 그길로 남쪽 비탈로 하산하여 절 밑 비스듬히 경사진 도로까지 내려왔다.

산에 갈 때부터 아내가 기를 쓰고 말리는 것이 찜찜하였던 터라, 안전지대까지 오자 긴장이 탁 풀렸다. 그 참에 돌부리인지 나무뿌리인지 모르는 것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몸이 한 바퀴 빙 돌면서 낙엽이 쌓인 곳으로 쳐 박혔고, 신기하게도 ‘딱’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는데, 그 뒤로 기브스를 하고 일어서기까지는 열흘이 걸려야만 했다.

나는 곧 뼈가 부러졌음을 알았고, 구조대가 달려오기까지 한 시간을 언 땅에 몸을 뉘이고 낮선 곳에서 홀로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이제까지 소 닭 보듯 한 관세음보살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배낭 속의 방한복을 꺼내 몸을 두르고,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며 버티는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일각이 여삼추 같은 시각이 흘러 119 대원이 오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처처에 생불이 존재하심을 알 수 있었다. 또 내가 가진 세속적인 지식과 편견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 줄 비로소 확연히 깨달았다.

그 일을 겪은 후로 등산 필수품 1호가 술 한 병과 방한복인데, 여름 산행에도 옷만큼은 두툼하게 갖고 다녔다. 소주는 딱딱하게 굳어진 몸을 푸는 데 그 이상 좋은 약이 없다. 만약 내가 알맞게 취했더라면 다치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들기 때문이다. 술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은 술을 멀리 하는 것이 약이요, 술이 체질에 맞는 이는 곁에 두고 조금씩 마시는 것이 좋은 법이겠지. 우주만물의 생성원리가 돌고 돌아 어우러진 모습이니,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가름할 수 없음이다. 다만 제 스스로 조절하고 맞추어 나갈 따름이다.

태백산은 우리 민족의 조상이 하강하여 신시를 열었던 곳이긴 하나, 단군의 자손이 분명한 나와는 유별나게 기가 맞지 않는 곳이었다. 어인 일일까? 그 산을 처음 갔을 때도 속이 거북하여 전 날 먹은 것을 다 토하는 바람에 차안에 있던 이들이 지독한 냄새로 인해 오만상을 찌푸리게 했고, 하루 종일 끙끙거리게 만들었으니 좋은 이미지를 가질리 없었다. 그러다 두 번째 가서 기어이 그 난리를 치고 왔으니, 그 산과는 묘한 악연이 있다.

또 한 번은 대구등산학교 동창회장 일을 맡아 볼 때 일이다. 첫 산행지가 단양 구담봉이었는데, 근 보름 전부터 행사를 성대히 하려고 사방으로 전화를 한다던가, 사돈에 팔촌이라도 아는 이는 찾아가 인사를 하는 둥, 하여튼 인원 동원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 후에 찾아 간 곳이었다. 그런데 산타기 전, 도로로 행군을 하는 도중에 술 취한 늙은이가 차로 들이 받아 열 몇 명의 부상자가 생겨 병원으로 긴급히 후송한 적이 있었다. 신문에도 한 페이지 났다고 나중에 들은 얘기다. 그 바람에 나는 구담봉 근처도 못간 채, 종일 병원에서 왔다 갔다 하며 자책과 후회로 하루를 보내야만 했었다. 그 뒤로 나의 뇌리 속에 두 곳은 영원히 기억하기 싫은 곳으로 각인되어 있다.

차츰 시간이 흘러 구담봉 사건에서 영감으로 얻은 점은, 나는 애초에 벼슬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손발이 피곤하게 일을 해서 먹고 살며, 고작해야 고리타분한 글 몇 줄 쓰는 것이 타고난 내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이지, 너무나 피곤한 삶이 여태까지 나를 지배해 왔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내안에 쌓여, 화석처럼 굳어진 돌 관념이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언젠가는 맞이할, 만인이 똑 같은 존재로 회귀하는 죽음 앞에서 미리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나는 지금도 태백산이라면 오금이 저린다. 또 가지 않는 산으로 정해두고 누가 뭐래도 가지 않을 작정이다. 다만 어느 날 아내가 슬며시 다가와 짐짓 한번 가보라고 권하든가, 아니면 함께 가자고 한다면 그 속을 얼추 짐작을 해 본 뒤에 따라 나설지 모르는 일이나, 지금의 나로서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큼 여지가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그 산의 정기가 나와는 맞지 않는 것으로 정해두고 있으니, 혹여 친한 벗들이 두 곳만 제외하고 다른 산에 가자면 대부분 흔쾌히 따라 나설 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는 속이 툭 터진 위인은 못 되는가 보다. 남들처럼 "한번 죽지 두 번 죽나" 라고 따라 나설 법도 하련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도 아내가 하지 말라는 것을, 가지 말라는 것을 감행한 결과가 그거니까, 이제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그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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