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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순례 취지,
'한라산(백록담)에서 백두산(천지)까지 걷겠습니다.'
도보자: 박 종숙.(산,내,들 산악회원)
'어머니 곁에만 살아온 내가 어디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요?'
* 취지내용은 '제주일보, 사람과 사람들' 3월11일자 인터넷 열어보시면 취재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 KBS2 방송, 4월17일 낮12시 40분, VJ클럽 영상 보실 수 있습니다.
* 국토순례 경로,
3월8일 대구공항에 붕~
3월9일 한라산 백록담 11시55분 등정, 12시30분에 본격적으로 출발하여,
제주도 일동 여객터미널-완도-강진-영암-나주-광주-장성IC 백양사입구-장성갈재-정읍-태인-전주 삼례-논산-공주-천안-평택-안성 만세고개-용인-경기도 광주-팔당 댐-대성리-청평-현리-양문-갈말(신철원)
※ 남한종단 1차 완료하였으며, 2차 북한종단하기 위해 강원도쪽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신철원-김화(판단 잘못으로 둘러감)-잠곡리-463번 도로(미지의 도로) 능선 넘어 사창리-화천-양구(지원받았음)-광치터널 원통-한계리-백담사 입구-진부령-간성-화진포-통일 전망대 신고서-검문소,
도보 중단,
걷고 싶어도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총으로 막고 있었습니다.
2004년 4월 6일 14시05분에 검문소에 두 손으로 터치하고 돌아섰습니다.
내년에 "제발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언제:2004년 3월8일-4월7일,
어디서 부터: 한라산 백록담-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 검문소까지.
누가: 박 종숙, 50세
소속은: 대등, 산,내,들 산악회.
★ 1차 남한종단 수기.
왜 험난한 길을 선택하느냐고?
그 물음에 잠시 육체가 멏추듯 합니다.
사람마다 성격과 행동이 다르지만,
마음 속에 우러나는 행동의식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 중에 본인의 한사람이지요.
어릴 적에 남들처럼 뛰어 놀지도 못하였고,
일반인처럼 학업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일념은 변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오랜 세월 속에,
온간 풍파와 역경을 견디어 오면서 자연을 동경해 왔지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내가 남북종단 하는데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년 전부터 백두대간 기획하였다가 주위에 많은 비판과 충고가
뒤따랐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지원해 줄 스폰서가 없어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입장에서도 지원해 줄 수 없는 입장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나름대로 수립한대로 체력유지하기 위해 훈련을 하였습니다.
매월 정기산행 빠지지 않았으며, 춘하추동 하중등반 매년 실시하였으며,
퇴근 후,
5KM 조깅 및 65L20KM 배낭 메고 1시간30분 동안 반복 훈련하였습니다.
그런 던 중에 여성시대(MBC라디오) 조그만한 월간 책을 일게 되었습니다.
여의도에서 남해까지 걸었다는 60대 할아버지의 수기를 감동 받았습니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지역감정) 불만 때문에 걸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에 남들처럼 걷고 싶었을 때 그 마음,
걷지 못했던 한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자 기획을 했습니다.
늘,
어머니가 저 때문에 고생도 고생하셨지만 아직도 저를 위해 걱정하시고 편하게 계시지 못함을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효도하는 방법은 건강한 모습,
장한 막내아들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작년부터(2003년) 국토순례계획작성 하였고, 비공개로 얘기 해보았으나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골안 동우회(불알친구들) 조금 지원 받아 2004년 3월8일날 대구공항에서 어머니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장도에 올랐습니다.
'내가 과연 어디까지 걸어 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면서...
출발부터 고통이었습니다.
대구공항에서 고령다산까지 걷고 난 후, 며칠 쉬고 무리하게 조깅하다가 오른다리 무름통증이... 무척 고민 많이 했습니다.
절룩거리니까 아내는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말렸지만 떠났습니다.
걷는 자체부터 고통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통증 가라앉하기 위해 제주에서도 침을 맞고 물리치료 하였지요.
9일날 악 조건에도 불구하고 백록담 11시55분에 등정했습니다.
못 생긴 나에게 행운이 있었습니다.
백록담 주위경관 깨끗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남북종단 기원, 좋은 징조였습니다.
까마귀도 내 옆에 앉아 폴딱 폴딱 뛰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출발하여 백두산까지...
내 자신도 생각해 보니 황당하고 어이 없었습니다.
벌써 지쳐 있었으니까요.
다행히도 그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강풍경보 주의보 발령되어 결항되었답니다.
제주일보와 제민일보에서는 나를 찾으려고 애를 썼던 모양입니다.
침, 물리치료 받고 난 후,
취재기자들과 만나 인터뷰하여,
3월11일 석간신문에 칼라사진과 함께 발행되었던군요.
싫지는 않았습니다.
전라남도 완도부터 육지로 진입이 후 본격적으로 고행이였습니다.
쓰러져 그 자리에서 침낭 꺼내 자기도 하였습니다.
다리 통증은 이루 말 할 수 없었고,
꽃샘추위에 귓바귀 동상 걸렸고, 발가락 물집은 상습적으로 생기고
입술은 물집처럼 부르트고,혀바닥에는 쫍살같은게 돋아나 식사하는데 애를 먹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소중하게 다루던 생명과 같은 교통지도 분실하여 난감하기도 하였습니다.
산악회장님이하 회원님, 골안 동우회, 그리고 친척들 외 많은 격려를 해 주셨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들어다 보면은 유일한 피로의 낙이었습니다.
공주대학교 ?교수님이 꼭 성공하라고 도움을 주셨던 것이 평생에 잊지 못할 것입니다.
3월30일,
1차 목표 갈말(신철원) 군청까지,
여유있게 10시10분에 사회복지과 직원들의 격려와 함께 도착확인결재 받았습니다.
다리 통증은 만성이 되어 1시간 정도 걸어가면 통증은 없어졌습니다
강원도 김화육단리에서 56번 도로 반대로 진입하여 무척 고생도 하였습니다.
대등 산,내,들 산악회에서 응원 지원나와 양구 웅진리에서 만날을 때,
꺼안고 사내답지 않게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동안 아마 끈끈한 정이 쌓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보좔 것 없는 저를 위해 응원 보내주신 산,내,들, 회장님이하 회원님께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얼마 남자 않는 구간,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정말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도 있었습니다.
한계리에서 KBS촬영 취재단 2명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1박2일동안 동행하면서,
여태 내가 걸어 온길 그대로 영상에 담아 갔습니다.
KBS2 TV방송 17일 토요일 낮 12시40분에 'VJ클럽'
방영할 예정이라 하였습니다.
걸어온 보람 피로가 확 풀리던군요.
그 이유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푸른 바다를 보면서...
출입신고서에서 검문소까지 8KM,
정보를 얻어 보겠다고 무식하게 걸어서 왔다갔다 왕복하였습니다.
통일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 보겠다고...
그 때까지도 기운이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통일전망대 4KM 남겨두고 헌병과 실랑이 하면서 검문소 벽에 두 손을 터치했습니다.
그 시간이 14시05분이었습니다.
검문소에서 통일전망대까지는 민간인 걸어갈 수 없다고 강력하게 제지하던군요.
북한 육로로 갈 수 있는 길목이라는 것을 알고는...
위안으로 삼고는 미련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달 만에 두 다리 쉬어보는 편한 차를 타고 내려오니,
왜,
눈물이 흐르는지?
내 자신이 대단하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할 장본인이 왜
눈물이 흐르는지 저도 모르겠던군요.
대구로 가기 위해 강릉으로 갔습니다.
마음씨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 경치 좋은 경포대로 안내해 줍니다.
바다 가에 있는 은진 횟집으로,
큰놈 생선 회 한 마리, 백세주 한병, 두 잔 먹었더니..
강하던 자신이 쉽게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허무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달래보려고 형님에게 전화도 해보았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숙박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 * *
동해고속버스 타고 집으로 집에 급하듯이 달려내려 왔습니다.
동부정류장,
아내는 백합 꽃 한 아름 주면서 눈시울 젖었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아 주시고는 얼굴 쓰담아 주셨습니다.
"오냐, 고상했제, 장하데이,"
어머니를 위해 맛있는 음식점에서 모처럼 웃고 떠들었습니다.
건강한 모습을 어머니에게 최고로 선물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서로가 보고 싶었했던 딸이 볼에다 뽀뽀해 줍니다.
행복한 웃음꽃이 또 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차 북한종단은,
국민과 함께 백두산(천지)까지 남북종단 간절히 이루어 주길 기원합니다.
"꼭 도와 주십시요'
한달여 동안 남한 국토순례를 무사히 마쳤음을 보고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4월21일 보고자 박 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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