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제부턴가 책을 잡으면 팔을 한껏 늘여 최대한 눈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여 읽게 되더군요.
나이 들수록 세상 모든 것들은 조금의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한다고 몸이 나를 가르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늦 가을에 앞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모진 겨울을 견디고
봄부터 가을까지 제 몫의 최선을 다한 나무의 모습은 처절하고 숭고해 보였습니다.
성한 잎이 거의 없는 나무는
아름다운 삶이 얼마나 큰 아픔을 견디는 것인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멀리서 손짓하는 아름다운 가을산이
깊이 들여다보면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와
한포기, 한포기의 풀과 꽃들이 어울려 붓칠한
거대한 풍경화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대구등산학교 단기반 23기 마지막 실습을 하면서,
가을산과 같은 어울림의 아름다운 힘을
사람 속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무거운 등산 가방을 둘러맨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어깨를 내리두르는 아픔을 참으며 밤에 산을 오르는 것이 저 혼자라면 어려웠을 것입니다.
팔공산 깊숙이 들어가 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무리에서 떨어지면 미아가 되리라는 불안감에다 가빠 오는 숨,
저게는 동기생들이 감탄하는 야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홀로 낙오되지 않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러나 기다려주고 위험을 알려주며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들에 밝아져
낯갈이 심한 저도 대등의 한 물결 속에 어우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생전 처음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 속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
커튼처럼 드리운 나뭇결 사이로 하나 둘 별이 보이고
어둠의 현을 켜는 작은 생명들의 소리에 귀가 맑게 씻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혼자가 아닌 대구등산학교 교훈처럼
실천하는 산악인으로 살아가는 선생님들과
이를 배우려는 아름다운 무리,
대등 단기반 23기 동기생들이 있었기에 체험할 수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산을 모르고,
그저 산이 있으니 좋아서 바라보고 그 품을 그리워 하다가
산에 대해서,
참 산악인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알게 되어 기쁩니다.
산악인이 가장 꺼리는 일임에도 물을 나누어 주신 김정희 씨,
푸짐한 인심과 가장 소녀적으로 명랑한 김인자 언니,
부지런하고 귀여운 공주 오지영님,
23기 분위기녀 김이란 동갑내기 님,
기분 좋은 미소를 가지신 김랑희님,
아, 새처럼 가벼워 부러웠던 최순남 님,
말 없이 힘든 일 도맡아 한 오영해 님,
그리고 봉사정신 가득한 오병조 님, 수고 많았던 양재관 님,
처음부터 끝까지 산 사나이의 모습과 신사도를 보여주신 모든 남성 동기님들과
마지막 밤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던 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미쳤지 미쳤지 하면서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라
미쳤지 미쳤지 하면서 더 열정적인 강의와 지도로
미칠 수 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기쁨을 보여주신 멋진 여러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등산학교 단기반 23기의 3주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산으로
제 기억 속에 우뚝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