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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
청명한 날씨다.
엊저녁까지 찌뿌둥 하던 하늘이 방긋 웃음을 드러냈다. 산 빛은 시원스런 녹색이다. 간편한 차림의 등산객이 점점이 선을 이루어 산을 오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 악우들의 발걸음도 가볍다.
마음도 가쁜 하고 마주치는 눈동자도 정답다.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라서 그런지 격의가 없다. 옷은 새것이 좋고 벗은 오랠수록 낫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문득 떠 오른다. 십여 년 전 의기하나로 산에서 만났고 산에서 늙어 가기로 언약한 사이들이다.
그땐 볼이 팽팽하니 홍안이었는데 이제 너나없이 이마에 단 계급장이 흉물스럽다. 남을 보고 나를 가늠하고 남은 나를 보고 자신을 어림하리라. 마음이야 소년이다. 다른 이가 날 보고 어른이라고 어려워하니,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따라오는 아내도 서리맞은 화초처럼 풀기가 줄어들었다.
떠도는 부평초처럼 바람 부는 데로 살다보니 바람을 닮은 셈이다. 아옹다옹 다투어봐야 그렇고 좀 더 가져봐야 별로 인생이 달라 질 것도 없다는 것을 살아가며 깨달았다. 걸음걸이도 한풀 꺽여 느슨해졌다.
비가 온 지리산은 산뜻하다. 계곡에 불어난 물이 흐르는 소리가 서늘하다. 물은 바위를 만나면 돌아 나가고 너른 소를 만나면 잠깐 쉬었다 간다. 굳이 높은 산을 넘으려 애쓰지 않고 산은 물이 가는 길을 터 준다. 물은 자연스레 흐르고 산은 솟아있다.
계곡의 다리에서 내려다 본 물은 투명하기가 거울 같다. 그 밑엔 크고 작은 조약돌이 바닥에 지천으로 널려있고 송사리떼가 재빠르게 쏘다니며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왜 사는지 아무런 의미도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나 보다 더 자유롭지 않는가? 어불성설이다.
사는 거야 밥 한 공기 나물 한 그릇에다 뜨뜻한 방에 드러누우면 그만이다. 그것도 송사리에 비하면 까다로운 요구다. 그 쯤해서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 . 내게는 셀 수 없을 만큼 가진 것이 많아도 만족을 모른다. 좀 더 부자로 살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 탓이다. 촌각도 맑은 마음일 수 없으니 찌든 때를 씻으려고 산을 오른다. 허허롭다. 오를수록 나눠주는 이가 많아지고 보따리는 가벼워진다.
언젠가 책에서 본 아메리카 어느 종족은 부락이 공동생활을 하며 그 날 필요한 양만큼 고기를 잡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엌에 있건 강에 있건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 들의 생각일 것이다.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헤가 엿보인다. 현대는 넘치고도 부족함을 느끼니 문명의 아이러니를 드러낸 셈이다.
이정표를 들여다 보니 그 중 한눈에 들어오는 게 남조선 인민군 사령부다. 빨치산의 근거지다. 그 전사들이 갈망하던 사회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빨치산의 숨소리는 역사 속에 남아 있었다. 허물어진 굴속에서 아군의 토벌작전과 비행기의 기 총 소사에도 살아 남아, 항전하던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지리산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넉넉하게 받아들였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저 산 자는 산대로 살 터전을 주고 죽은 자는 죽은 대로 품에 안아, 그들의 억울한 역사를 쓸어주고 보듬어준다. 뉘 이리도 넉넉함을 가졌는가?
계곡을 한 발 한발 오른다. 다리를 건너고 소를 지나니 너른 바위가 나왔다. 쉰명은 족히 앉을만한 바위는 쉬어가라고 등을 길게 늘이고 누워있다. 그 밑에는 제법 높은 낭떠러지에 굵은 물살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 천헤의 요람이다. 멀찍이 떨어진 산허리를 바라보니 익모초 같은 꽃이 붉게 피어 있다. 마치 녹색 바다에 붉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하다.
자연스럽다. 산은 철따라 푸른 옷, 붉은 옷, 흰 옷으로 바뀌며 산수 간의 진리를 가르친다. 말없는 스승이다. 눈을 아래로 돌리니 저 밑에 절 집이 보이고 더 아래 사바세계가 있다. 성냥갑 같은 집 속에 개미 보다 더 작은 인간들이 꼬물거리는데 움직임도 마치 굼뱅이 같다.
다시 산을 오른다. 저 만치 보이는 폭포를 향해 꼬부랑길에 민초들의 행렬은 이어진다. 곁에 보이는 건 풀이요 꽃이다. 나무 사이로 얼굴을 살짝 내민 들꽃이나 이끼 낀 곳에 뿌리내린 풀이나 환경 따라 산다는 건 우리네와 다를 바 없으리라.
허우적거리며 오르다, 누군가 탄성소리에 고개를 드니 한신 폭포다. 동지를 지나 대지도 얼어붙는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면 이 곳은 멋진 강빙으로 장관을 이룬다. 그 땐 산 꾼 더러 허연 등을 내밀고 오르도록 유혹한다. 지난날 이 빙벽이 내게 먼저 오르도록 기회를 주었을 때 물러선 기억이 났다. 산은 내게 자신을 성찰하고 참다운 용기가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귀뜸한 때문이었다.
눈을 돌리니 멀리 보이는 풍경이 더욱 더 이채롭다. 이제 멀 지 않아 이곳까지 오르기가 힘이 들것이다. 이미 중간에 낙오한 사람이 태반이다. 짤막한 시간들이 우리 앞에서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다. 삶이 방랑이라면, 자연 속에 돌아갈 헌 몸도 더러는 산 속에서 헤매야겠다.
내게 있어서 지리산은 아버지이고 어머니다. 오를 수 없는 한계에는 물러서게 하고, 게으름을 피울 때는 멀리서 아름다운 산자락을 드러내 오르도록 권유한다. 마치 달빛 아래 아름다운 선녀가 날개옷을 벗어, 나무꾼의 심금을 뒤흔들어 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내려보내서는 나른한 행복감에 포만의 자유를 느끼게 한다. 카메라에 담는 형상보다, 무시로 부서지는 하이얀 포말과 싱그런 녹색을 가슴 가득 채워 온다. 그게 공으로 얻는 수입이다. 그 너른 가슴을 열어 주고 생명의 젖을 먹이는 그대. 아! 지리산은 말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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