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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분의 1지도를 가지고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2~3mm씩 짧은 선을 그으며 깔딱 고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길 긋기 작업으로 나는 오전에 지쳐버렸다. 근시와 노안, 난시까지 겹친 이 복잡한 눈을 가지고 그런 정밀 작업을 하기에 내 손이 너무 부족했다.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 30cm 자를 양손으로 번갈아 잡으며 나침반과 동촌지도와 새로 나눠준 팔공산지도와 볼펜에 메모용지까지 들기에는 오징어 다리만큼의 손이 필요했다.
드디어 오후에 오리엔티어링 경기가 열렸다. 어떤 내용의 시합인지 생소하였다. 출발시간이 되자 지도 한 장을 받았다. 출발 지점부터 도착 지점까지 순서대로 원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지도를 보고 새로운 지도에 그대로 옮겨 그렸다.
그리고 바로 동화사 매표소 쪽으로 출발을 하였다. 목표점 근처의 도로변에 주홍색 포스트마크가 보였지만 나는 바로 지나쳐 언덕위의 건물모서리 쪽으로 다가갔다. 원을 옮겨 그릴 때 지도상의 도로를 보았지만 원의 중심은 뒤쪽의 건물모서리에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언덕위로는 가본 적이 없어서 과연 그런 건물이 있는지가 의심되었다. 그런데 과연 그런 건물이 있었다. 첫 번째 포스트마크의 펀치를 1번 난에 눌렀다.
두번째 원은 어느 건물의 뒷산에 있었다. 철책선은 없을까, 과연 산에 올라 갈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하는 의심을 하면서 나는 건물의 위치를 찾았다. 그곳에도 건물 앞에 상갓집 문에 달린 조등(弔燈)처럼 포스트 마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장 지나쳐서 건물 뒤로 갔다. 원의 중심은 산의 골에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골짜기에 주홍색 포스트 마크가 갓 시집온 새색시의 연지처럼 수줍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장 큰 난관은 세 번째 목표물이었다. 그건 시설지구 주차장 화장실 뒤편의 산에 있는 목표물이었다. 옮겨 그릴 때 중심을 잘못 옮겨 그린 것인지 내 지도에는 산의 능선 쪽에 중심이 있었다. 그러나 목표물은 없었다. 쉽게 찾으리라 생각했던 것을 못 찾으니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지도를 다시보고 원안의 작은 골짜기를 주시했다. 혹시 이곳이 중심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화장실 뒤편의 계곡을 살폈더니 과연 그곳에 있었다. 만약 다른 포스트 마크가 한 개 더 있었다면 몹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것은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재미가 있었다. 혼동을 일으키는 두어 개의 포스트 마크가 더 있었지만 내게는 그것이 오히려 목적지 근처에 다 왔구나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다. 찾을 목적지가 있는 삶은 행복하다. 목적지가 있는 삶…….
아버지에게는 목적지가 없었다. 가진 것이 너무 없어 갈 곳을 몰라 하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도 셋방을 살던 우리는 몇 달치 방세를 못 냈다. 주인집에서 방을 비워주기를 요구하던 때에, 주인집 아들과 나는 주먹다짐을 하였다. 나가달라는 주인집과 이사 가자는 나의 성화에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이삿짐을 싸서 리어카에 실었다. 눈이 오는 겨울이었다. 리어카 한 대가 통과할 작은 숲길을 한참 가다가 속도가 점점 늦어지더니 리어카를 세우고 아버지가 돌아섰다. “쉬었다가 생각 좀 해보고 가자.”
나도 아버지 따라 뒤돌아보니 눈 위에 두 줄의 리어카 바퀴자국과 우리 네 식구의 8개의 발자국이 올망졸망 찍혀 있었다. 다시 앞쪽을 바라보니 두 개의 갈림길이 있었다. 아버지는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반겨줄 곳도, 가진 것도 없는 아버지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지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 좀 해보고 가자는 말이 ‘갈 곳이 없구나’ 로 깨우쳐 들린 건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였다. 정처 없는 아버지의 낡은 모자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아버지에게는 목적지가 없었다. 목적지가.
탑골 안쪽의 마지막 목표물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보니 한 쌍의 봉분이 보인다. 이곳이 탑골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기위해 나는 여러 책을 뒤져 보았으나 그런 유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그 유래를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 봉분 앞의 깨진 탑의 기단을 발견하고서부터였다. 골짜기에 탑이 있었구나. 그래서 탑골이라고 불리는 것이었구나.
나는 그런 돈 안되는 향토사적인 면에 관심이 많다. 팔공산은 화강암이 융기한 산이라서 공룡발자국이 없다는 어느 사학교수님의 발언을 뒤집기 위해 나는 2년을 찾아다녀 결국 초례봉을 올라가는 신천골에서 공룡발자국을 찾아내었다. 신문에 사진과 기사가 났다.
마침내 마지막 목적지인 출발점에 돌아왔다. 나침반과 지도한장만 들고 40여분을 돌았다. 배낭을 메고 체력싸움을 하던 기존의 실습과는 다르게 이것은 어쩌면 두뇌스포츠인것 같다. 말없이 봉사하는 장원석 실기강사님께 미션을 수행한 지도를 드리고 동기들과 어울렸다.
시종일관 오리엔티어링을 가르쳐주신 김훈동 강사님과 장원석 강사님, 사진촬영해주신 최원식 강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티눈수술을 하여 맨발로 투혼을 불사른 여제현 동기님, 발에 쥐가 나서도 끝까지 미션을 수행한 회장님, 정말 순수한 동기님들의 고생담과 실수담으로 뒤풀이 시간은 웃음의 도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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