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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비로 넘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일요일은 화창해져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5주간의 교육 무사히 마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지금 하시는 일에 많은 도움 되셨기를 염원합니다.
> 팔공산의 봄은 좀 늦게 찾아왔다. 시내 공원에 벚꽃이 피고 개나리가 노랗게 빛나며 길가를 치장하여도 팔공산은 요지부동이었다. 성급한 상인들은 벚꽃축제를 시작하였고 우리는 각설이 타령과 노래자랑으로 요란한 구경꾼들을 헤치고 오리엔티어링 포스트 박스를 찾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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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축제가 끝나고 관광객이 썰물처럼 사라진 후, 시내 벚꽃은 다지고, 목련도 처절하게 낱낱이 꽃잎을 바닥에 떨어뜨릴 때, 팔공산은 벚꽃이 비로소 만개하여 하나의 꽃 터널을 이루었다. 팔공산은 그런 산이었다. 봄이 왔다고 급히 화장하고 버선발로 쫓아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 서서히 사모관대 쓰고 옥대를 두른 후 중후한 모습으로 봄을 맞이하는 그런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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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팔공산에 비가 왔다. 곡우를 맞아 조용히 내리는 봄비가 아니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이 아침부터 흩뿌렸다. 등산학교 5주차 실습교육일, 그것도 서봉정상 부근에서 텐트 없이 비박한다는 일정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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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토요일 아침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침낭이 젖을까봐 침낭커버를 빌리고, 배낭 안은 비닐봉투를 감싸 젖지 않게 조치하였다. 여벌의 옷과 여벌의 운동화도 비에 젖을까봐 배낭에 넣고 나니 65리터 배낭이 터질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릎 아래는 젖을 것 같아 등산화를 신은 후 비닐봉지로 감싸고 그 위를 스패츠로 다시 감싸고 신발 바닥부분은 미끄러지지 않게 비닐을 도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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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그건 성공적인 아이디어였다. 저녁집결시간까지 비바람이 세차게 뿌리자 강사님은 산장에서 1박을 한다고 하여 비박에 가슴 졸이던 우리의 우려를 한순간에 씻어주었다. 그리고 염불암 인근 산장까지 빗속을 뚫고 한줄기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야간산행을 감행하였다. 마침내 산장에 도착하였을 때 다른 동기 분들이 등산화를 적셨음에도 불구하고 비닐을 벗은 내 등산화는 건조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어 나를 기쁘게 하였다. 시멘트 바닥에 비닐을 깔아준 동기 덕에 나는 바닥에 침낭을 펴고 잤다. 어설프게 보이던 산장이 호텔처럼 아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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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니 숲속에 나무들이 안개 속에 묻혀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한탄하며 스마트 폰으로 그 풍경을 여러 장 촬영했다. 다음날 일정은 웃다가 울다가 하며 보낸 하루였다. 유모어 감각이 풍부한 이태순 강사님의 재치있는말씀에 시종일관 웃다가, 드디어 안자일렌으로 굴비두름을 한 후 암벽앞에 서자 나는 사색이 되었다. 2주차 암벽 교육시에 가장 가슴 졸이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바위에 또 올라서다니.
> 여유가 있는 동기들은 올라가서 산 아래 풍경을 감상하며 즐겼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힘겹게 올라가면 아득히 내려 보이는 아래 풍경이 어지럽고, 또 내려 갈 일이 걱정이 되었다. 집에 와서 지도를 살펴보니 그곳이 톱날능선쯤 되어 보이지만 평소 같으면 돌아갔을 그 바위들을 우리는 오르고 내리며 통과했다. 강사님은 사뿐사뿐 올라가서 높은 바위 위에 우뚝 서지만 나는 애벌레가 힘겹게 나무를 올라가듯 엉금엉금 기었고, 바위정상에서도 서지를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 공포에 질린 애벌레처럼 힘겹게 몇 개의 바위를 오르고 내리다 보니 마침내 안자일렌을 해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뒤에 따라온 분에게 두렵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그분도 ‘오줌을 찔끔 찔끔 사면서 올랐다’고하여 같이 웃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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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서 계속되는 파계재 까지 계속되는 릿지 등반, 헬기착륙장에서의 나침반 교육이 있었다. 한 가지 한심한일은 방위각을 측정하는 일이나, 안자일렌의 보우라인 매듭법이나 모두 지난주나 그 전날 배운 것인데 자꾸 잊어버린다는 일이다. 나이 쉰이 훌쩍 넘었으니 그런다고 자위할 수도 있지만 젊은 날 즐기던 술이 뇌세포를 많이 상하게 했음이 분명하니 모두 내 잘못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세월이 내편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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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파계사를 통하여 하산하니 동창회장님과 많은 간부님들, 그리고 안경섭강사님이 음식들을 준비하여 따뜻한 환영을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예산도 많지 않고, 정부의 보조금도 없이 오로지 산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무료로 강의를 해주시는 강사님들, 모두 자비로 충당하였을 음식들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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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간의 교육과정, 결국 해냈다. 늦게나마 입교하여 비록 부진학생이었지만 끝까지 낙오하지는 않았다. 도와준 동기생들이 없었으면 못해냈을 일이 많았을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한 나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2012년 봄은 이렇게 보내는가 보다. 수태골 옆 순환도로를 돌다보니 벚꽃이 많이 떨어졌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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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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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사랑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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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에 벚꽃이 하늘거리며 나비가 내려앉듯이 떨어진다. 2012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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