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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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 2005/02/03 11:14:24, 조회수:2534 )
이름  

최기환

제목  

존경합니다

일반인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고행길을 수행하신 박종숙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 집니다.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혀 졌습니다. 등산학교를 통해서 알게된 사이지만 정말 존경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도전과 모범을 보이신 당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의 행동과 이상은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것입니다.
**화이팅**수고 하셨습니다.**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걸었습니다"
>
>10월1일부터 10월20일 14시20분 임진각 도착완료.
>
>대등인, 장년11기, 암벽16기, 동계15기
>현재 산,내,들, 산악회 회원 소속입니다.
>이름은 박 종숙 남자, 나이는 51세 입니다.
>
> '2차 국토순례'
>
> "우리도 해낼 수 있었습니다."
>
> '부산에서 임진강까지 걸었습니다.'
>
>☆ 이름: 박 종숙(남) 나이 51세
>☆ 주소: 경북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금류타운 203동 103호
>☆ 취지: 450만 장애인 희망의 메시지, '통일의 길'.
> "부산에서 평양까지 걷겠습니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
>☆ 언제: 2004년 10월 1일, 부산시청 10시 출발.
>☆ 도보코스:
> 부산⇒ 울산⇒ 경주⇒ 영천⇒ 하양⇒ 대구⇒ 칠곡⇒ 왜관⇒ 구미⇒ 김천 ⇒ 황간⇒ 옥천⇒ 대전⇒ 청주⇒ 진천⇒ 안성⇒ 광주⇒ 성남⇒ 서울⇒ 파 주⇒ 문산⇒ 임진각,
>이상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가로막힌 철조망 때문에...
>한 민족 한 형제인데도 철조망으로 도보를 막고 있었습니다.
>반세기란 세월?...
>본인도 무서운 전쟁 때문에 치료한번 받지 못하고 영원한 장애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
>♤ 도보 기행,
>새털처럼 구름이 깔려있는 가을하늘,
>풍성한 오곡, 따가운 가을빛 받으면서 부산에서 평양까지 걷자.
>나만이 걸을 수 있는 여유, 또 한번 걸어 보았습니다.
>고령군 장애인협회에서 천이백명 되는 장애인의 생활 현실을 바라보니 안타가운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줄 방법이 없을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도보계획서를 작성하여 고령군청(사회복지과)에 제출하였습니다.
>군수님외 많은 분들이 염려반 기대반 하시면서 최선을 다해 주길 당부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반인도 힘들어서 못하는데... 차가운 소리도 들었습니다.
>전국 450만 장애인들에게 좋은 메시지가 될 수 있다면 경부선 따라 스스로 걸어보겠다는 마음이 배낭보다 더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장애인촉진공단 대구직업능력개발센타 휴학 계를 제출하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교사의 표정을 보았을 때 꼭 완주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재활학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굳은 마음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통일의 길, 우리도 해낼 수 있다"
>고령지체장애인협회지회 사무국장(이 경림) 적극적인 도움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9월 22일 고령군청 국악 당에서 군수님외 고령장애인회원, 많은 내빈 분이 참석 하에 국토순례 성공기원 발대식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건강이 염려되기도 하였지만 사실은 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10월 달은 행사들이 많은 날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 국토순례는 지체장애인이 몇 일만에 완주하느냐? 하는 나름대로 비교해 볼 수 있다는 도전이미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먼 훗날 남북통일이 된다면 후배장애인들이 백두산, 평양, 못 다한 꿈 이어주길 바란 뿐입니다.
>
>추석명절 일정이 바쁘게 보내고,
>9월 30일 목요일 날, 대구 역 대합실,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저는 웃는 모습을 보이면서 편안하게 해드렸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무궁화열차 타고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내려가면서 뭘 생각하였을까?...
>살기 위해 바쁘게들 사는데...
>"당신은 뭘 하는 팔자이기에 힘든 걸음 하느냐?"
>". . . . . "
>격려하기 앞서 이런 질문 많이 받았습니다.
>2번째 방문하는 부산,
>부산산비탈 밑에 빈민촌이 즐비하게 있는 걸로 기억나는데 지금은 지하철과 고층아파트로 변해 있었습니다.
>서로간에 얼굴도 모르고 자란 고종사촌 누님 동생들 50년 만에 만나니 서먹하기만 하였지만 서로 궁금한 고모(외가) 안부 얘기하다보니 밤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
>10월 1일 금요일 10시 부산시청,
>고령군 지체장애인협회 회장(김명식), 사무국장(이경림), 한우리회 총무부장(김상섭), 부산까지 내려와 출발 응원해 주시니,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장애인촉진공단 대구직업능력개발센타 패션디자인과 학생((청주거주 이명옥)같이 하루 동행,
>"파이팅!"
>부산갈매기도 놀랜 정도로 힘찬 응원소리,
>배웅 팀과 함께 서로 굳은 악수를 나누면서 부산 중심 가를 벗어났습니다.
>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 하여 기장군 진입 전에 6시간만에 도보체험하고 명옥씨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며칠만 같이 걸었으면 했었는데...
>그 날은 혼자된 외로움과 자동차 소음 견뎌 내면서 밤늦게 11시까지 걸었습니다.
>부산↔울산↔경주 산업도로 잘되어 있어 컨테이너트럭 대형차량들이 수없이 오가고 도로의 광경,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날부터 무리해서 그럴까, 다리 감각이 없을 정도로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함이 역습해 왔습니다.
>밤이슬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에서 누워 있으니 대한민국 땅이 내 집 것처럼 너무 편안했습니다.
>자금이 넉넉지 못해 날씨만 좋으며 계속 비박 할 마음으로...
>새벽05시30분쯤에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고 차량의 소음과 싸우면서 배가 고플 때까지 걸었습니다.
>아침식사와 중식은 도로에서 해결하였고, 석식은 식당에서 영양보충 했습니다. 풍성한 과일들이 많아(포도, 메주콩, 홍시, 대추, 밤, 고구마) 조금씩 서리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 잘못했다고 기도하면서)
>21~22시쯤에 비박 또는 24시 사우나에서 숙박 해결하였습니다.
>3일째 되던 날,
>경주불국사입구쯤에 왔을까?
>발가락 통증과 따가움이 심하게 느껴 확인해 보니 물집이 생기다 못해 터져 피가 날 정도로 생살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무름 관절 통증, 배낭압박 의해 어깨통증, 혓바닥 좁쌀, 증상이 나타났었지만 참고 견디며 정신력으로 걸었습니다.
>경주 남산에는 검은 먹구름과 비바람 몰려오는 것 같아 얼른 비를 피하기 위해 절룩거리며 소낙비 피하려고 했지만 배낭은 물론 음뼉 젖고 말았습니다.
>오후16시 즘에 거금 들어 여관투숙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지도확인하면서 걸었는데 새 도로가 생겼는지, 노점상인 말듣고 좌측도로로 갔더니만 엉뚱한 도로로 7KM나 걸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었습니다.
>구미시 진입 산업 도로가 새로 생겨 5KM나 걷다가 농부에게 여쭈었더니...
>산길로 넘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영천에 도착했을 때 대구 다 왔나 생각했는데 1박 더 하고 부지런히 걸어야만 대구에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고령장애인협회, 대구직업능력개발센타, 대등 산내들 산악회, 가족들에게, 아침마다 위치상황 문자메시지를 띄워 보냈습니다.
>발가락이 너무 고통스러워 아내에게 등산화 갖다 달라고 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10월 6일 날,
>하양 경일대학교 부근에서 늦은 밤에 비박 해야만 했습니다.
>늦게라도 대구에 도착해 보려고 하였지만 너무 무리인 것 같았습니다.
>환영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28KM 남았음)) 이른 새벽(04시)에 출발하였습니다.
>대구 도착하면 도움을 받기 위해 산 친구(김성도)에게 사전에 연락하였습니다. 지원을 받고 있는 성원넥서스 스포츠(대표:진재근)에서 하루 묵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재근형 만났다는 마음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양에서 대구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지루하고 멀기만 하였습니다.
>따가운 가을햇살 속에 부지런히 걸어가니 산 친구(성도)가 반겨줍니다.
>늘 힘들고 지칠 때 산내들 산악회원들이 도와 주니 고맙기만 했습니다.
>아양교를 지나 오후2시20분 만촌동 성원넥서스 스포츠빌딩 도착하였습니다.
>로비에 "국토순례 기원 환영합니다"
>눈물이 뚝...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성원넥서스 직원들의 꽃다발과 환영을 받으니 너무 고마웠습니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더 굳게 가지게 되어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재근형님 집에 하루 묵고 그 다음 날 경상북도 도청 사회복지과직원, 고령장애인협회, 한국장애인촉진공단 패션디자인과 학생 및 선생님들이 환영을 받았으며 몇 기자들도 취재해 가기도 하였습니다.
>아내도 무척 반가워하면서도 늘 걱정하는 모습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늘 미안한 마음...
>칠곡으로 향할 때 모두들 배웅해 주는 모습들,
>나는 해냈니라.
>또한 칠곡 따발재 넘어 갈 때,
>산내들 산악회원들 우정도보, 국토순례 6명 회원이 동참하여 저녁 늦게 왜관까지 걸었습니다.
>저에게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다음 날 더 힘있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힘들게 하는 난이도 도보도 있었습니다.
>김천에서 대전까지 연속적인 오르막도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배낭과 싸움이었습니다.
>구름도 쉬어간다는 추풍령고개가 실제로 넘어보니 실감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나그네인 저도 하루 밤 쉬었습니다.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노근리 사건' 현장을 보니까 어떻게 좁은 통로에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총질하였을까?
>왜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하였을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각 지방마다 전통적인 특성이 있었습니다.
>영동시는 국악의 고장, 이천시는 도자기의 산실, 특히 하게도 눈길 끄는 것은 옥천군은 허수아비가 도로 가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주에는 85회 전국체전 행사 중이기도 하였습니다.
>대전시 진입 전 마달령 넘었을 때 갑자기 허벅지에 갑자기 통증이 발생하여 나를 무척 괴롭게 하였지만 몇 번 경험이 있었어 응급처지는 하였지만 그 순간에 포기해야 하나 싶어 고생해서 걸어온 뒤안길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애당초 고통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걷는 게 아니었는가.
>고통이 있을 때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 그리고 어머님 얼굴이 아른거리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목적을 위해서 한발자국이라도 이를 악물고 전진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나는 한자리에만 머물고 살다보니 넓고 넓은 대한민국이란 땅덩어리 단어만 알았을 뿐, 실제로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 국토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국토인 줄 몰랐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영령, 저절로 고개 숙여졌습니다.
>진천군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는 배티고개,
>소백산에서 이어지는 차령산맥 준령에서 너무 힘들었을 때 "하느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쉬면서 기도하니 하느님이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셨습니다.
>고개 넘으니까 할머니 순두부 집이 있었습니다.
>격려해 주시면서 밥 한술 얻어먹었을 때 장애인의 관심을 가져 주셨습니다.
>"에이구 그 먼길 힘들게 걸어 왔다구?"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소중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불교 종교는 아니지만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걸어보면서 스님이 제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승용차에서 내려서 격려와 함께 좋은 말씀해 주시고 가는 그 의미, 고행이란 단어 불교에서 전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용기와 희망이 잃어가고 있는 요즘 사람들,
>욕심 없이 시골 풍경처럼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이천시 도달했을 때 아내가 "당신 생일 축하해" 50살 생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아~ ~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여태 살아오면서 후회스러웠습니다.
>무엇을 이루어 놓았느냐?
>걸으면서 지난 과거를 생각하니까 괜히 마음이 미워집니다.
>아니 눈물이 앞을 가려습니다.
>어릴 적부터 마음 속에 그리워했던 자연의 동경, 불가능하다는 주위 평가였지만 하겠다는 의지 변함이 없었기에 참으며 견디며 걷고 또 걷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을 향해 평양까지 아니 백두산 정상까지 끝임 없이 말입니다.
>
>18일, 성남시에서 일박, 새벽4시에 일어나 얼마 남지 않는 서울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당신에게 미역국 해드리지 못해 어쩌지?"
>"올라갈까요?"
>". . . . ."
>'나는 늦게나마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아내얼굴이 떠올랐습니다.
>19일날 서울시청 09시에 도착하였다. 계획보다 4일 단축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날씨가 나에게 행운을 주듯이 연속적인 화창한 가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보호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서울 한강야경, 왕십리, 동대문운동장, 을지로, 불광동 등등...
>그러나 낮에는 답답하고 빨리 도심을 벗어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동대문운동장 부근에 황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시민 위한 공중화장실이 있었는데 2층에는 일반화장실, 1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이었는데 자물쇠로 꼭 잠겨 있었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일반인과 같이 공동으로 사용해도 괜찮을 덴데...
>슬씁하고 안타까웠습니다.
>08시30분 드디어 서울시청 도착하였습니다.
>내 자신이 여기까지 걸어 왔다는 자부심이 참 흐뭇했습니다.
>사회복지과 들러 확인사인 받고 곧바로 불광동으로 걸었습니다.
>파주읍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인천에서 장인 장모님이 국토순례 소식을 듣고 처남 함께 응원 나오셨고 15년 만난 객지친구가 "약골이었던 네가 국토순례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문산읍 다다았를 때 대구직업개발능력센타(재활학교)에서 지도교사와 패션디자인과생들이 먼길 마다하고 임진각까지 와서 환영을 맞이해 주니 나는 또 북쪽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내 일생에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 우리친구와 환희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선생님(패션디자인과 이광자, 생활지도 이종원)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배워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보답이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도 해낼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정을 나누기 위해 같이 걷기도 하였습니다.
>3.8휴전선만 없다면 친구들과 평양까지 단숨에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쉽게도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나, 16시 20분에 임진각 역에서 멎춤어야만 했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길 따라 걷고 싶다" 나름대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잃어버린 30년'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남북으로 울려 퍼졌습니다.(설운도 가수)
>같은 민족끼리 싸웠던 전쟁의 비극이 너무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완주했다는 기쁨보다 비극적인 남북관계 아픔을 달래기 위해 강 나루터 식당에서 민물참게 매운탕,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통일이 되면은 평양까지 걸어 갈 것을 지도선생님 앞에 약속했습니다.
>
>장애인의 서러움을 훌 털어 버리고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부산에서 임진각까지 통일의 길 "우리도 해 낼 수 있다." 관심을 가져주신 고령군 지체장애인협회 회장님외 회원, 고령군수님외 사회복지과, 성원넥서스 스포츠센타 회장님외 직원, 한국장애인 능력개발센타 원장님외 교사님 학생, 그리고 대구등산학교, 그 외 모든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해 깊이감사 드립니다.
>
> ★ 총동창 회장님, 그리고 저를 아시는 악우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다가오는 을유년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사업 번창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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