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2]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우리는 끝없이 발전하는 문명속에 살고 있다. 이 문명의 최종목표는 인간이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 보다. 그 결과, 한경보존을 한다고들 하고 있지만 자연은 본래의 모습을 잃고 결국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그 때가 얼마쯤 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우리의 후손들은 틀림없이 머리만 비대해지고, 근육은 숟가락만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아져 있을 것이다. 설마? 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문명의 발전방향을 바꾸지 않는한 틀림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울창한 숲, 맑은 계곡과 호수는 없어지고 바다조차 처참하게 오염될 것이며, 이미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속에서 도시문명속에 길들여 지고, 편안함과 쾌락(안락)을 추구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모두 원하는 만큼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콘크리트, 자동차, 기계, 전자 등이 뒤범벅된 도시에서 동물보다 훨씬 더 많이 노동을 하며 문명과 돈의 노예가 되어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주말이면 밀린 잠을 자거나, 콘크리트 교회, 극장, 레스토랑, 커피숍 그리고 기껏해야 콘크리트 콘도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휴식이고, 여가이고, 취미이고 인생을 사는 행복일까?

아웃도어 라이프 (OUT-DOOR LIFE)
선진국민과 후진국민을 구별하는 여러가지 척도 가운데, ‘자연을 즐기는가?’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주말이면 자연속으로 가서 생활한다. 별장, 통나무 오두막, 캠핑 등 여러장소에서 다양한 아웃도어(OUT-DOOR)활동을 즐긴다. 이미 이들은 진정한 삶의 풍요는 자연속에서의 생활 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도 주말을 도시에서 썩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 가운데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지만 모두 하류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아웃도어 라이프(OUT-DOOR LIFE)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냥 깊은 숲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등산, 낚시, 캠핑, 카약/카누, 래프팅, MTB, 트레킹... 그 중에서 최고는 등산일 것이다. 왜냐 하면 산은 자연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아웃도어 라이프 인구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등산을 통해 자연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등산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업 그레이드(UP GRADE)된 것이다.

 

우리가 적응하고 진화해야 할 목표는?
자연속에서의 생활을 모르고 성장한 젊은이들 대부분은 시골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단지 더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을 싫어하며, 마치 도시가 진짜 고향인 것처럼 안락을 느낀다. 이 들이 이것을 진짜 본능으로 인식하고 도시문명에 적응해 간다면 앞서 말한 무서운 결과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왜하면 욕구는 유전정보를 서서히 변화시키고 우리의 후손들은 도시문명에 맞게 진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벌써 진행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은 아직도 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대자연속에서의 생존을 위해 진화시켜 온 큰 체격과 강인한 근육을 가지고 있고, 도시에서 태어난 우리의 2세들도 그렇게 태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가 도시문명속에서 살게 된 것이 몇 년 되었다고 벌써 유전인자가 변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유전인자가 대자연속에서의 생활에 맞게 되어 있다면, 왜 우리는 도시문명을 좋아하고 끝없이 안락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동물보다 더 수준이 낮은 과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삶의 행복이 부와 명예와 무노동과 안락함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화하고 적응해야 할 목표는 끝없는 안락을 쫓는 도시문명이 아니고 대자연과의 조화이다.

자연으로 돌아 가자.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몸은 자연의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자연의 기운을 원하고 있다. 우리의 몸속에 있는 유전정보는 대자연속에서 살아가는 것에 알맞게 되어 있고, 우리의 신체도 아직까지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에 알맞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도시속에서만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모르는 불행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도 때때로 분위기 좋은 자연환경을 접할 때면 '아! 좋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왜 좋은가는 모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살고 있어도 주말이면 대자연속에서 지내다 와야 한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의 자유, 즉 주말은 평생동안 몇 번 없다. 1년에 52번, 그것도 약속이 있고, 잠자야 하고, 결혼식에 가야하고... 결국 1년에 몇 번. 이런 사람들은 결국 그 대가를 몸으로 치루게 된다. 내 몸이 원하는 자연을 외면하고 오염된 문명속에서 몸을 굴리게 되면 신체는 병이 들고, 정신은 척박해 진다. 그리고 후손에게 까지 '친도시문명'이라는 인자가 깊이 각인된 유전인자를 물려주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 자연속의 모든 것은 아름답다. 어떤 이들은 멋지고 웅장한 풍경이나 아름다운 단풍은 좋지만, 깊은 숲속의 제멋대로 자란 나무나 수풀들이 서로 얼켜있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나뭇잎 썩는 냄새나 흙냄새가 좋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수년전 파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독일 뮌헨에서 밤기차로 파리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차창밖으로 스치는 유럽농촌의 새벽풍경에 취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풍요로운 감흥에 젖어 들었다. 완만한 구릉과 숲, 농가, 시냇물... 그러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마르세이유 궁전 등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이것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을까? 자연은 또 얼마나 망가뜨리고' 이런 생각만 들었다. 이런 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풍요와 아름다움을 모르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자연속으로 가면 우선 공기가 다르다. 새벽공기는 그중에서 최고이다. 만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만 보고도, 내가 그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안락을 위해 필요이상 다른 것을 괴롭히지 않는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다. 도시속에서의 어떤 만족과 열매도 자연속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시간의 흐름속에 오묘하게 변화하는 자연은 풍요롭고, 그속에 있고 느끼는 나 역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등산은 왜 즐거운가? 
우리 인간의 유전인자속에는‘신체의 모든 능력을 향상 시켜라.’라는 신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먼 엣날 원시시대때 부터 자연속에서 뛰고 달리며 힘을 쓰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과 운동능력은 삶과 후손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축구나 농구와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축구를 좋아하는 가 물으면, 재미있으니까 라고 할 것이고, 왜 재미있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 질 것이다. 나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신체능력의 향상’이라는 유전신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경기는 바로 유전신호의 시험장이다. 우리 인간은 모든 운동능력을 종목별로 끊임없이 향상시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뛰고, 달리고, 힘쓰고... 등의 운동능력외에 ‘잘 올라가는 능력’또한 우리 유전신호가 계속 향상시킬 것을 지시하는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올라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이다. 간난아이가 무조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만 하고, 아이들은 높은 담벼락이나 나무를 오르며 놀기를 좋아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암벽등반을 즐긴다.
‘왜 산에 오르는 가?’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도시문명과 자연, 안락과 노동, 풍요와 각박함 등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들의 기준은 보상에 있다. 보상이 없는 행위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축구나 농구는 운동의 즐거움이라는 보상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등산은 힘들기만 하지 보상이 없다고 생각한다. 축구나 농구도 체력을 사용하는 고통이 있다. 등산중에 힘드는 것은 축구나 농구에서 힘드는 것과 다른 것일까? 우리가 산을 선택했다는 것은 남들은 잘 모르는 유전신호를 해독한 것이다.
등산은 모든 놀이가운데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연속에서의 생할에 가장 충실하기 때문이다. 등산은 삶을 일시적으로 산으로 옮긴 것이다. 등산으로 삶을 업그레이드 한 우리는 김영도 선생님께서 말했듯이 사람을 분류할 때, 재산, 지위, 직업, 성별, 성격 등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미 그런 것은 관심밖이다. 우리는 산에 다니는 사람, 안 다니는 사람으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