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에베레스트(Everest ) 케이투(K2) 캉첸중가(Kangchenjunga)
로체(Lhotse) 마칼루(Makalu) 초오유(Cho Oyu)
다울라기리(Dhaulagiri) 마나슬루(Manaslu) 낭가파르밧(Nanga Parbat)
안나푸르나(Annapurna) 가셔브룸1봉(GasherbrumⅠ) 브로드피크(Broad Peak)
가셔브룸2봉(Gasherbrum Ⅱ)
시샤팡마(shisha Pangma)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확인된 것은 1852년의 일이다.
영국은 1849년부터 식민지였던 인도의 북부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산맥에 대한 광범위한 측량사업을 벌였는데 그중에서 P15란 기호로 표기되었던 봉우리가 해발 8,840미터로 세계 최고의 높이를 가진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이렇게 발견된 세계 최고봉은 그후로도 P15란 기호로만 불리다가 1865년에 가서야 비로소 전임 측량국 장관이었던 조지 에베레스트경(Sir Gorge Everest)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에베레스트(Mt. Everest)라 명명하게 되었다. 이것은 산의 이름에 인명을 붙일 수 없었던 당시의 관례를 깬 것으로 재래의 고유명이 없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후 십 수년이 지나서 이 산에 초모룽마(Chomolangma)라는 티베트 이름이 옛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미 세상에서는 에베레스트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초모룽마는 티베트어로 초(Chomo)는 '여신, 수도녀'를 뜻하며 룽마(Lungma)는 '산골짜기, 지역, 경지'를 뜻한다. 그래서 초모룽마는 '대지의 여신, 세계의 여신'을 의미한다. 또 네팔인들은 사가르마타(Sagarmatha)라고 부르는데 네팔어로 사가르(Sagar)는 '세계'를, 그리고 마타(Matha)는 정상을 의미한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원정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이다. 1919년 영국왕립지질협회의 회장에 취임한 영허스번즈는 그의 임기 동안에 에베레스트 등정을 가장 큰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에베레스트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에베레스트위원회는 후에 히말라야위원회로 바뀌었으나 수차례에 걸친 에베레스트 원정은 모두 이 위원회에서 주관하게 된다.

1921년 봄 드디어 제3의 극지라 불리는 에베레스트봉에 역사적인 도전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하워드 버리가 이끈 이 원정은 4명의 대원과 3명의 과학자가 참가한 정찰 원정이었다 . 이들의 목적은 에베레스트에 이르는 티베트쪽 접근로를 찾고 등정 가능한 루트를 찾는 것이었는데, 4개월에 걸친 원정기간 동안 인도의 다아질링을 거쳐 티베트로 들어가 에베레스트의 북동릉의 안부, 즉 노스 콜(6,985m)까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2차대전이 시작되기 직전인 1936년까지 7차례나 도전을 했으나 최고봉의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때까지 인간이 오른 최고의 높이는 8,572미터였다. 2차대전이 끝나고 네팔왕국이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직후부터 에베레스트에 대한 도전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과 스위스, 그리고 영국원정대가 각축을 벌였으나 몇 년동안 계속 패퇴를 거듭했다.

1953년 프레몬순기의 입산허가를 네팔정부로부터 받아놓았던 영국은 52년에 스위스원정대가 실패하자 제9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파견했다. 존 헌트대장은 이때까지 원정 중에서 기량이 가장 뛰어난 대원들을 선발했다. 원정대는 2개월간의 등반 끝에 힐라리대원과 텐징 셀파를 마지막 정상공격조로 정했고 이들은 5월 28일에 남동릉을 올라 8,350미터 지점에 제9캠프를 설치했다.
5월29일 날씨는 쾌청하게 맑았다. 새벽 6시30분경 마지막 캠프를 떠난 힐라리와 텐징은 오전 9시경에 남봉에 올라서서 정상을 보았다. 그곳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설능을 등반하던 두 사람은 5미터 정도의 수직의 암부를 만났다(후에 이곳은 힐라리 스탭이라고 명명되었다). 그곳을 어렵게 오른 두 사람은 바로 앞에 보이는 정상을 향해 마지막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더 이상 높은 곳이 없는 어느 꼭지점에 섰다. 그곳이 세계 최고봉의 정상이었다.

1953년 5월29일 오전 11시30분 드디어 인류 최초로 제3의 극점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선 것이다.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밝혀진 지 실로 100년 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에베레스트는 세계산악인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매년 원정대가 끊이질 않았다. 1997년 말까지 44년동안 43개국에서 391회 원정이 있었고, 676명의 등정자를 배출했다. 이들중 여성은 39명이고 1회이상 오른 사람은 90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히생자는 22개국에서 148명이나 되었다.

한국은 1977년 9월 15일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대장 김영도)의 고상돈대원과 셀파 1명이 남동릉 루트로 등정해 세계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