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에베레스트(Everest ) 케이투(K2) 캉첸중가(Kangchenjunga)
로체(Lhotse) 마칼루(Makalu) 초오유(Cho Oyu)
다울라기리(Dhaulagiri) 마나슬루(Manaslu) 낭가파르밧(Nanga Parbat)
안나푸르나(Annapurna) 가셔브룸1봉(GasherbrumⅠ) 브로드피크(Broad Peak)
가셔브룸2봉(Gasherbrum Ⅱ)
시샤팡마(shisha Pangma)
 


네팔 제2의 수도 포카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마나슬루 산군의 최고봉이자 세계 제 8위의 고봉이다. 주위에 북봉(7,154m), 서봉(7,571m)과 피크29(7,835m), 추렌히말(7,371m) 등을 거느리고 있다.

인도측량국의 측량기호로 P30이었던 마나슬루는 산스크리트어로 '마음'이나 '영혼'을 뜻하는 '마나사(manasa)'와 '나라'나 '토지'를 의미하는 '룽(Lung)'의 합성어로 '영혼의 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현지인들은 이 산을 신성시하여 초등정을 목표로한 일본대의 등반을 수년간 집요하게 방해하기도 했다.

마나슬루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네팔왕국이 개국한 직후인 1950년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영국원정대(대장 틸만)가 이산의 북서면을 답사했고, 이어서 52년부터 일본원정대가 3회에 걸쳐 등반활동을 펼치면서 북측과 동릉의 등반 가능한 루트를 관찰했다. 마침내 1956년 5월 9일에 마키대장이 이끄는 일본대에 의해서 이마니시와 셀파 걀첸 노르부가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그후 1971년에는 다까하시가 이끄는 일본원정대가 북서벽을 경유하는 새롭고 험난한 루트로 2등을 기록하면서 이 산이 '일본인의 산'임을 재확인 했다. 이어서 72년에는 라인홀트 메스너가 남벽에 새 루트를 뚫었다.  

마나슬루는 한국산악인들에게는 비극의 산으로 인식되어 있다. 1971년 최초원정에서 김기섭대장이 추락사한데 이어 72년에는 김정섭대장이 이끈 원정대가 6,950미터 지점에서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10명의 셀파가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사상 두 번재로 큰 조난사고를 당했다. 결국 1980년 봄에 결국 이인정 대장이 이끄는 동국산악회에 의해 세계에서 8번째로 등정에 성공했다.